박근혜 대통령이 ‘반격카드’를 꺼냈다. 16일 법무부 장관에게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 시행사 실소유주인 이영복 회장의 비리의혹 사건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엘시티 비리사건에 여야 정치인이 대거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이 야당의 퇴진요구를 거부한 채 국정운영에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엘시티 카드'로 반격 나선 박 대통령…여야 대선주자 겨냥?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의 엘시티 비리사건 엄정 수사 지시’를 알리면서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인 이 회장의 부산엘시티 비리 사건과 관련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자금이 조성돼 여야 정치인과 공직자들에게 뇌물로 제공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야권에서 엘시티 비리 의혹을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지어 정치공세에 나선 만큼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지만 정치권 연루 의혹 제기 자체가 정치권을 정면 겨냥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007년 시작된 엘시티 사업은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부지 6만5000㎡에 101층짜리 레지던스호텔 1개 동과 85층짜리 아파트 2개 동을 짓는 사업이다. 검찰은 엘시티 인허가와 사업비(2조7400억원) 조달, 시공사 유치 등에 어려움을 겪던 이 회장이 570억원가량의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 인사를 상대로 로비에 쓴 정황을 포착, 조사 중이다. 여야의 유력한 대선주자들까지 연루됐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퇴진 요구를 받는 박 대통령이 마치 정상적으로 국정을 수행하는 대통령처럼 철저한 수사와 연루자 엄단을 지시한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박 대통령은 엘시티 사건을 사정당국에 맡겨두고 검찰조사에 응해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나 성실하게 답하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은 “전형적인 물타기이자 공안정국을 조장해 퇴진 국면을 전환하려는 꼼수”라며 “박 대통령은 공작정치를 발동하려 하지 말고 겸허히 검찰 수사를 받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박 대통령의 엘시티 사건 수사 지시는 앞으로 국정 운영에 본격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로 분석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안총기 주벨기에·유럽연합(EU) 대사를 외교부 제2차관에 내정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원회와의 협의를 위해 조태용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했다. 국방부가 지난 14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에 가서명한 것도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다음주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것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야3당이 퇴진 요구를 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은 하야(下野) 또는 퇴진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한 참모는 “어떻게 의혹만 갖고 대통령에게 내려오라고 할 수 있느냐. 의혹만으로 하야하는 게 맞느냐”며 “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한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고, 박 대통령은 아마 목숨을 내놓고라도 지키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 추천 총리와 영수회담 등 이미 제시한 카드를 계속 살려놓은 채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의혹들을 해명한 뒤 국정 정상화를 도와달라고 당부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는 “탄핵은 국회의 권한”이라며 탄핵까지도 각오하는 분위기다.

장진모/임현우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