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경제부총리와 내정자 동거 벌써 2주째
2명의 상전 모시는 '총리실'…경제 컨트롤타워 누구냐 혼선
꽉 막힌 정국에 공직사회 스톱…"내년 업무보고 엄두도 못내"

"대통령이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한 청와대 참모가 털어놓은 푸념이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하야 주장이 거침없이 터져나오고 향후 정국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지경이 되자 공무원 사회의 분위기를 전하는 말이다.

내각을 통할하는 국무총리실부터 일선 부처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현상이다.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는 어김없이 매일 아침 삼청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내정자 사무실로 출근한다.

여전히 내정자 신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관심은 사그라들었다.

총리로 내정된 직후에는 취재진 70여명이 사무실 앞에서 장사진을 이뤘지만, 이제 5명도 나오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 내정자를 총리 후보로 지명한 지 15일로 정확하게 2주가 됐다.

김 내정자 지명 직후만 해도 조속한 시일 내에 정국 수습의 방향이 잡힐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꽉 막힌 정국은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총리실에서는 황교안 국무총리와 김 내정자의 어색한 동거가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교체를 앞둔 황 총리 입장에선 국정의 2인자로서 업무를 수행하기가 힘든 상황이 돼버렸다.

황 총리는 지난 2일 김 내정자 지명 직후 곧바로 '이임식' 일정을 잡았다가 취소해 설화를 낳기도 했다.

총리실 내에서도 업무 혼선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총리실 직원 입장에서는 황 총리와 김 내정자 2명의 '상전'을 모시고 있다.

총리실은 지난 2일 김 내정자 지명 이후 인사청문회 준비팀을 본격 가동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해 놓았지만, 현재는 청문회 준비팀을 가동할 수도, 그렇다고 해체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황이다.

지난 11일 황 총리가 긴급현안질문에 답하기 위해 국회에 출석했을 때에는 대부분의 총리실 직원들이 국회에 나가는 바람에 김 내정자가 '덩그러니' 금융연수원 사무실에 남겨진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고 했다.

당장 외교일정에는 곧바로 차질이 빚어졌다.

황 총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석하기 위해 페루 리마를 방문하면서 아르헨티나도 함께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최종적으로 아르헨티나 일정이 빠졌고, 수행단 명단도 뒤늦게 확정됐다.

이 같은 혼선은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임종룡 경제부총리 내정자가 어정쩡하게 동거하는 기획재정부에서도 빚어지고 있다.

당초 여권에서는 '트럼프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임 내정자에 대한 청문 절차라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민주당이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선결 조건으로 제시하며 임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는 일단 무산됐다.

결국, 황 총리와 마찬가지로 경질이 기정사실로 된 유 부총리가 당분간 경제 정책의 방향타를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경제 정책의 컨트롤타워 부재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국 교착상황은 공직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정국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보다는 관망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현 상황에서 새로운 업무를 추진하기보다는 관리 모드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며 "상황이 워낙 엄중해 새로운 일을 벌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중앙부처의 국장급 공무원은 "내년 업무보고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인데 핵심 국정과제에 대한 업무 추진 방향이 나오지 않아 업무보고 준비를 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국정이 정상화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영(令)이 서지 않기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에게 정책 현안의 진행 상황을 문의하고, 청와대 참모들 역시 주요 업무를 챙기고 있지만, 일선 부처에는 지시 사항이 잘 먹혀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고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이 토로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도 조속한 시일 내에 교착 국면이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당초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양자회담을 할 계획이었지만 추 대표가 당내 강력한 반발로 회담 참석을 철회하면서 당분간 야당과의 대화를 통한 돌파구를 마련하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야당은 여론을 등에 업고 박 대통령에 대한 퇴진 압박의 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이지만, 박 대통령이 퇴진은 불가하다는 기존의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부터 북핵 위기, 조선업 등 구조조정 등에 이르기까지 현안은 산적해 있는데 행정부가 멈춰 서면서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간다는 지적이다.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jesus786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