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의 뜻"이라며 '오버액션' 정황…조사 시점·방식 이르면 내주 윤곽

'비선 실세' 최순실(60·구속)씨를 둘러싼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왕수석' 안종범(57·구속)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여러 불법행위에 주연이나 조연으로 관여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씨의 측근들이 하나둘 조사를 받을 때마다 안 전 수석의 비리도 덩달아 커지는 양상이다.

안 전 수석과 최씨 측의 유착 정황이 속속 밝혀지면서 배후에서 역할을 한것으로 의심되는 박근혜 대통령을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12일 검찰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수사 상황으로는 안 전 수석은 최씨 측의 국정농단 또는 이권 개입을 배후에서 지원사격하는 사실상의 '행동대장' 역할을 한 측면이 강해보인다.

그는 최씨는 물론 최씨의 최측근이자 '문화계 비선권력'으로 지목된 차은택(47·구속)씨 비리에도 깊이 연루돼 있다.

안 전 수석은 우선 최씨와 함께 대기업을 압박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하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안 전 수석이 두 재단 실무진들과 접촉하며 대기업의 기금 출연을 독려한 정황과 진술은 많다.

롯데·SK·부영 등의 추가 지원을 직접 챙겼다는 단서도 포착된 상태다.

안 전 수석이 최씨의 사익 추구를 도운 흔적도 있다.

그는 올 3월 최씨의 개인회사인 더블루K가 스위스 누슬리사와 손잡고 1천억원대 규모의 평창동계올림픽 관중석 등 시설 공사 수주를 위한 업무 협약을 맺는 자리에 김종(55)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함께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더블루K는 최씨가 동계올림픽의 각종 이권을 노리고 급조한 '기획업체'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안 전 수석이 문체부 산하 공기업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를 압박해 더블루K를 에이전트로 끼워 넣어 장애인 펜싱팀을 창단하도록 한 사실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차은택씨 관련 비리에도 안 전 수석이 전면에 등장한다.

안 전 수석은 차씨의 지인을 통신대기업인 KT 임원으로 취직시키고 그의 측근이 대표로 있는 광고업체 플레이그라운드커뮤니케이션즈를 KT의 광고대행사로 선정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중소광고업체가 인수한 옛 포스코 계열 광고대행사 '포레카' 지분을 차씨 측이 빼앗으려 할 때 동조한 정황도 확인됐다.

안 전 수석이 이처럼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불법행위에 가담한 배경엔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 있지 않았겠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경제학 교수 출신인 안 전 수석은 1990년부터 30년 가까이 연구·학계에만 몸담은 인물이다.

박 대통령이 2014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앉힌 것도 그의 해박한 경제이론과 조세정책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안 전 수석의 면모는 정통 경제학자라는 사실을 무색게 한다.

차라리 우직한 '행동대장'의 행태에 가까운 게 아니냐는 비판적 얘기도 나온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고위 관료가 다루기에는 사안 자체가 지나치게 사적이고 가벼우며 처리 방식도 거칠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런 모든 불법행위가 그의 독자적 판단 또는 자발적 의지에 따른 것이겠느냐는 의문이 뒤따른다.

게다가 안 전 수석은 최씨는 물론 차씨와 학연이든 지연이든 직·간접적인 인연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40년 지기'인 최씨 측과 안 전 수석 사이의 연결고리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이 최씨와 그의 인맥이 추진하는 사업을 돕고자 충직하고 사명감이 강한 안 전 수석에게 '행동대장' 역할을 맡겼다는 것이다.

검찰도 박 대통령이 큰 틀에서 일종의 '운'을 띄우면 안 전 수석이 이를 받들어 과도하게 최씨측의 이권 사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일탈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실제 안 전 수석은 검찰 조사에서 박 대통령이 'GKL 장애인 펜싱팀 창단', '포레카 지분 매각'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잘 챙겨봐 달라'고 당부했고 그에 따라 일을 추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수석 자신도 대체로 대통령 의중에 따를 수밖에 없는 참모 입장이었음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향후 검찰 수사는 국정 책임자인 박 대통령이 관련 부처 실무진이 챙길 법한 사안에 일일이 관여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

최순실씨와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 최씨의 국정 개입을 용인 또는 묵인했는지 등이 핵심이다.

정호성(47·구속)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최씨에게 청와대 대외비 문서를 유출했다는 의혹도 이런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30년 가까이 박 대통령 옆을 지킨 정 전 비서관이 뻔히 불법임을 알면서 독단적으로 문서를 빼냈을 개연성은 낮다.

그 역시 검찰에서 "박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를 고려해 문건을 건넸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결국, 모든 방향타가 박 대통령을 가리키는 상황에서 직접 조사는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관심은 시점과 방식이다.

조사 시기는 최순실씨와 안 전 수석 등 핵심 인물들이 대거 재판에 넘겨지는 이달 말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정농단 의혹의 전모가 대략 손에 잡히는 시점이기도 하다.

검찰도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조사하는 만큼 충분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방식은 방문 또는 서면조사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선 진실 규명을 바라는 국민적 여론이 비등한 점을 고려해 검찰청사로 직접 소환해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 조사 방법과 절차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며 "이르면 다음 주께 조사 여부와 시점·방식 등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lu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