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승리한 것은 내년 예정된 한국 대선에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선 ‘대세론’과 ‘안정’에 안주해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선거는 막판 돌발 변수에 따라 판세가 흔들리기 일쑤고, 후보 간 연대 등 정치 지형을 급변시키는 요인도 적지 않은 만큼 어떤 후보도 투표함이 열릴 때까지 방심은 금물이란 교훈이다.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각 당의 경선부터 지난달 말까지 박빙의 지지율을 보인 적도 있지만 큰 흐름은 힐러리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다. 미국 역대 대선에서 선거일 직전 달인 10월에 그때까지 우세하던 후보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악재(클린턴 이메일 스캔들 등)가 터져 열세였던 후보가 당선되는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가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한국 대선 후보들의 현재 지지율이 막판까지 이어지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역대 한국 대선에서도 미국 선거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지지율에서 밀리던 ‘언더독(underdog: 스포츠에서 우승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이 막판 역전극을 펼치며 대권을 손에 넣곤 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각종 여론조사 결과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각각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에 앞서 나가면서 ‘대세론’을 형성했으나 막판에 뒤집혔다. 1997년 이 후보의 패배는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 이인제 후보의 경선 불복 후 대선 출마 등이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2002년 대선에선 이 후보 측이 ‘대세론’과 ‘안정’에 안주해 개혁과 변화를 기치로 내건 노 후보에게 ‘되치기’를 당했다.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선거 전략을 짜는데 지지율이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고 그 흐름을 면밀하게 관찰해야 하지만 앞서간다고 방심하다간 오히려 ‘독’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반기문 대망론’ ‘문재인 대세론’은 견제심을 자극해 다른 후보들을 뭉치게 하는 등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안정보다는 현상 변화를 바라는 게 표심이고, 먹고사는 문제 등 유권자의 마음을 어떻게 충족시키느냐가 선거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5% 숨은표’, 이른바 ‘샤이 토리(shy Tory)’도 당락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샤이 토리’는 1992년 영국 총선 직전 최종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이 1%포인트 차이로 노동당에 지는 것으로 예측됐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7.6%포인트 차로 이긴 데서 나온 말이다. 인기 없는 정당이나 후보를 찍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껴 실제 표를 던질 때까지 자신의 의견을 나타내지 않는 유권자를 말한다. 트럼프는 막판 여론조사에서 5%포인트 이내에서 밀렸지만 선거에선 승리했다.

한국 여론조사의 경우 부동표는 대체적으로 30%대이며, 응답률은 15% 안팎에 그친다. 자동응답전화(ARS) 조사는 5%대에 머물기도 한다. 표본오차를 ±2.5~3.5%포인트로 잡더라도 정확한 여론조사를 하긴 쉽지 않다. 독일 커뮤니케이션학자인 노엘레 노이만의 ‘침묵의 나선형 이론’에 따르면 미디어가 전파하고 있는 다수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이 다를 때 대중은 침묵하는 성향이 있다. 지난 4·13총선 때 대다수 여론조사 업체가 새누리당의 승리를 예측했지만 결과가 반대로 나타난 것은 이런 분석과 무관치 않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