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2선퇴진이 해법·APEC 못가는 대통령이 트럼프에 어떻게 대처하나" 공세
국정공백 장기화 책임론 부담, 국면전환 우려…투쟁수위 '고심'
총리 후보 논의보다 '2선 퇴진' 관철 집중…"유인구에 안말린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국무총리 국회추천' 카드를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이 9일 고민에 빠졌다.

겉으로는 "대통령의 2선 퇴진을 명시해야 한다"고 공세를 펴고 있지만, 강경 일변도로만 나설 경우 자칫 국정혼란 수습을 외면한다는 비난여론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 미국 대선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 당선되며 외교 분야에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빠른 정국안정을 바라는 여론이 야권에는 부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야권은 "오히려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2선 퇴진을 통한 정국 수습이 급선무"라고 공세를 폈지만, 물밑에서는 역풍을 고려해 공세 수위를 조절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신중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야 3당은 이날 당 대표 회동을 하고서 박 대통령의 제안에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청와대를 향해서는 "야권의 분열을 조장하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꼼수 제안"이라고 공격을 이어가면서 정국 주도권 유지에 힘을 쏟았다.

여기에 총리 후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삼가면서 일단 대통령의 2선 퇴진을 관철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유인구에 말릴 일은 하지 않겠다.

총리 후보군의 이름을 얘기하는 순간에 말리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오후 들어서는 미국 대선 결과를 오히려 공세의 계기로 삼는 모습도 감지됐다.

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통화에서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빨리 국정을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의 2선 퇴진을 명확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대여 강경기조의 변화가 없느냐는 질문에도 "당연하다.

트럼프는 블랙홀이 아니다"라고 했다.

조응천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이단아 트럼프의 당선으로 국제정세에 큰 정국혼란이 더 위기를 심화시키지 않도록 하루빨리 대통령의 거취 및 총리권한을 둘러싼 논란을 해소해야 한다"며 "안보상황을 정쟁에 이용하는 세력에는 철퇴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도 "문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어쩌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도 불참하는 대통령을 갖게 됐는데, 트럼프 당선인에는 어떻게 대처할지 숨이 막힌다"며 "이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잘 처리하고 좋은 지도자를 뽑아야 좋은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투쟁 기조에 대해서도 "궤도를 수정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도 트위터에 글을 올려 "한국 외교가 시험대에 오르는데, 정상외교 불능 상태로 이 거친 파고를 어떻게 넘길지 걱정"이라며 "불만을 외면하는 정치세력은 가차없이 버림받는다.

대통령에 의한 헌정중단 사태를 하루 빨리 종식시켜 대내외적 국민 불안을 해소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야권은 물밑에서는 여론의 역풍을 염두에 둘 시점이라는 주장이 점차 번지고 잇다.

미국 대선 결과로 국민의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강경 일변도의 투쟁노선은 국정 공백을 장기화시킨다는 비난 여론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에 집중돼 있던 국민의 시선이 분산될 수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날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종교계 인사들을 만나고서 기자들이 "외교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런 때에는 전문성이 발휘가 안된다"고 농담을 하며 당혹스러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이날 민주당이 오후 국회에서 개최한 외교·안보현안회의의 한 참석자는 "트럼프마저 우리를 이렇게 괴롭히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야권 관계자는 "미국 대선 결과 대내외적 불안요소가 커진 것은 사실"이라며 "여론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고 했다.

투쟁수위를 완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12일 당 차원의 국민보고대회는 진행하지만, 지도부가 시민단체 주최 민중 총궐기 시위에 참가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합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물밑에서는 개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총리 후보의 자격요건 등에 대한 논의가 오가고 있다.

지도부는 총리 추천을 일축했지만, 국정 정상화를 위해 미리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특정인사들을 두고 총리직에 어울리는지에 대한 하마평도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이정현 서혜림 기자 hysu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