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실세들 모두 관계 부인…극소수 비선만 상대했을 수도
대통령과 관계 악용해 인사·이권개입 가능성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이 차츰 그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검찰 수사와 함께 현 정부 실세들 입에서 하나둘 흘러나오는 말에서도 최씨 국정농단의 윤곽이 감지된다.

3일 지금까지 나온 현 정부 실세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최씨는 각계 주요 인사들을 직접 사귀면서 인맥을 넓혀 이익을 추구하는 '마당발'형 이라기보다 박 대통령을 직접 상대해 원하는 바를 얻는 방식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발언의 신뢰성을 의심받기는 하지만, 현 정부에서 실세로 불린 여러 공직자는 한결같이 최씨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왕실장'으로 불릴 만큼 실세 중 실세로 꼽힌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재직 당시 최씨에 관해 "보고받은 일이 없고, 최씨를 알지 못한다.

만난 일도, 통화한 일도 없다"며 최씨와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역시 박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는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자신이 최씨를 만나거나 그와 통화한 적이 없으며, 과거부터 언론보도로 최씨에 관한 이야기를 접한 것이 전부라고 밝혔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 및 모금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등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인 김종 전 문체부 제2차관 역시 "(최씨를) 만나본 적이 없고 유선상으로도 연락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대기업을 상대로 재단 출연금을 강제 모금했다는 의혹의 당사자인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조차 최씨를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이 거짓일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사실로 인정한다면 최씨는 국정 전반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거물들과도 접촉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물론 이들이 간접으로 최씨의 존재를 인지했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최씨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정호성 부속·안봉근 국정홍보 전 비서관), 일부 부속실 행정관 등 극소수 '비선'과만 접촉하며 박 대통령과 '직거래'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최씨는 청와대 출입 자체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이영선 청와대 부속실 행정관이 운전한 차량 뒷좌석에 타고 비표도 없이 청와대를 드나들었다는 의혹이꽤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최씨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PC에는 대통령 연설문 등 대외비로 분류되는 중요 자료가 담겼다.

이 자료를 청와대에서 최씨에게 건넸다면, 청와대 업무 구조상 그 과정에 3인방이 연루됐으리라 보는 시각이 강하다.

박근혜 정부 초반 청와대 본관에 침대 3개가 들어간 것도 최씨가 청와대를 드나들면서 잠을 자는 데 쓴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이런 정황들로 볼 때 최씨는 대통령과 개인적 관계를 무기로 문화체육계 등 각계 인사와 이권에 개입하고, 대기업들을 상대로 재단 설립자금 출연 등을 강요했을 개연성이 있다.

검찰도 최씨가 안 전 수석을 앞세워 대기업들에 재단 기금 출연을 강요했다고 보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공범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아울러 그간 최씨의 최측근 고영태씨, 최씨와 밀접한 인물로 알려진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이영선 전 행정관을 불러 최씨의 청와대 출입 여부를 확인하는 등 국정농단 의혹의 실체 규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은 최씨가 사용한 태블릿PC에 청와대 문건이 저장된 경위를 확인하고자 내주쯤 '3인방' 중 하나인 정호성 비서관 소환도 검토하고 있다.

국정농단 의혹의 실체와 구조가 선명히 드러날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같은 비리는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이나 내각의 장관 등 공적 조직 보다는 소위 '문고리 3인방'을 중심으로 은막 뒤에서 핵심 정책결정 등을 내리는 비정상적인 국정운영을 해온 점에서도 일정 부분 기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pul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