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이해찬, 김종필 등 역대 책임총리 전례로 꼽혀
민심이반에 여소야대 국면…총리 교체시 野 의견 반영 불가피
책임총리 넘어 국정주도 가능…"분권형 대통령제 버금가는 막강 권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하는 가운데 '책임총리'를 요구하는 정치권 요구가 높아지면서 현실화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통령의 권위가 실추된 상황에서 현재의 국정혼란 상황을 타개하려면 책임총리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당위론을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할 명분이 별로 없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책임총리'는 법률적 용어가 아니라 정치적 용어다.

책임총리제는 국무총리에게 헌법에 보장된 국무위원 제청권과 각료해임 건의권 등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그나마 극복하고 보완할 수 있는 장치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언급될 때마다 책임총리제가 '전가의 보도'처럼 해법으로 등장했지만, 실제 책임총리가 구현된 사례는 거의 없다.

책임총리제가 실현되려면 반대로 대통령이 권력을 상당부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역대 총리 가운데 책임총리에 가장 가까웠던 총리 유형과 사례는 김영삼 정부의 이회창 전 총리와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전 총리 등이 꼽힌다.

두 전직 총리는 모두 헌법에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행사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의 책임총리 실험은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사뭇 달랐다.

이회창 전 총리의 경우 '대독총리'를 탈피해 책임총리상에 대한 물꼬를 텄지만, 총리 권한을 놓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충돌하면서 4개월 만에 중도 하차했다.

이에 비해 이해찬 전 총리는 '정치적인 동지'격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실질적으로 국정운영을 주도, 책임총리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대중 정부의 김종필 전 총리는 대통령 보좌를 넘어 직접 국정 현안을 컨트롤하는 등 가장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지만, 책임총리라기보다는 정권의 '공동 주주' 성격이 강했다.

박 대통령 역시 대선 공약으로 책임총리 구현을 내세웠지만, 정홍원 전 총리나 황교안 총리 모두 '관리형 총리'에 머물렀다는 분석이다.

그렇지만 이번에 새롭게 총리가 임명되면 신임 총리는 전례 없이 최강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하고,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책임총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상당부분 권한을 내려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총리를 교체할 경우 신임 총리 임명 과정에서조차 야당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일방적으로 총리를 임명했다가는 국회 비준안 처리가 힘들어지고, 국정 공백이 장기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임총리 후보군으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와 손학규 전 상임고문 등 야권 인사의 이름까지 거론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신임 총리는 책임총리를 넘어서 내치를 실질적으로 담당하면서 국정 주도권을 잡는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의 전초 단계가 구현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3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가 세워지는 경우 총리는 실질적으로 분권형 대통령제에 버금갈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서 요구하는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현재로선 많다.

거국중립내각이란 특정 정당이나 정파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여야가 각각 추천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꾸리는 내각이다.

책임총리제보다 더 많은 권력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에 집권세력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이다.

실제로 황교안 총리는 지난 2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거국내각 문제에 대해선 신중히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며 "우리나라를 시험의 대상으로 할 수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라고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jesus786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