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사고조사 결과 발표…"공간정위 상실로 인한 사고 추정"
"기체 결함·정비 불량 없어"…링스헬기 운항 다음 주 재개


지난달 말 우리 해군 링스 해상작전헬기 1대가 동해상에 추락한 사고는 조종사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일시적으로 비행 상태를 올바로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돼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 헬기 조종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체에서 탈출하지 않은 채 조종간을 꽉 붙잡고 전우들을 살리고자 최선을 다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군은 27일 "이번 링스 헬기 추락사고를 조사해온 해군 중앙사고조사위원회는 조종사가 해상 무월광(달빛이 없는 상태) 야간비행에서 일시적인 '공간정위 상실' 상태에 진입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헬기가 추락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공간정위 상실(Spatial Disorientation)이란 조종사가 비행 상태를 확인할 기준점으로 삼을 외부 표식을 볼 수 없어 순간적으로 기체의 자세, 속도, 비행 방향, 상승·하강 등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달이 뜨지 않은 밤이나 짙은 구름 속에서 어떤 외부 물체도 볼 수 없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번 링스헬기 추락사고 조사 결과, 사고 헬기는 지난달 26일 밤 8시 57분께 이지스함인 서애류성룡함에서 이함해 수분 동안 400피트(약 120m) 상공에서 비행하던 중 갑자기 상승을 시작해 약 30초 만에 1천피트 높이까지 올라갔다.

해군은 조종사가 이때 공간정위 상실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상고도를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해수면에 다다랐다고 판단한 탓에 급상승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종사는 너무 높이 상승했다고 판단했는지, 다시 하강을 시작했는데 해수면에서 4피트(약 1.2m) 높이까지 내려갔다.

바다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상태에 처한 것이다.

비로소 공간정위 상실 상태에서 벗어난 듯 조종사는 헬기를 다시 상승시키고자 엔진을 최대한 가동하며 구조를 요청하는 '메이데이' 신호를 타전했다.

이때 조종사가 조종간을 밀고 당기며 헬기를 급상승시키는 과정에서 불안정해진 기체가 뒤집혀 해상에 추락한 것으로 해군은 추정하고 있다.

사고 헬기는 추락 과정에서 메이데이 신호를 3차례 더 보냈다.

해상에서는 조종사가 비행 상태를 확인하는 기준점으로 삼을 물체가 거의 없어 공간정위 상실 상태에 빠지기 쉽다.

이 때문에 해상작전헬기 베테랑 조종사들도 야간비행을 할 때는 한겨울에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긴장한다고 한다.

2010년 4월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링스 헬기 추락사고도 조종사가 공간정위 상실 상태에 들어가 발생했다.

외국에서는 해상작전헬기의 야간비행을 피하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 군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항상 노출돼 있어 위험을 무릅쓰고 야간비행 훈련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고 헬기 정조종사인 고(故) 김경민 소령은 사고 발생 하루 만에 수심 약 1천m 해저에서 발견됐을 때 안전벨트를 그대로 맨 채 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헬기가 추락하는 동안에도 엔진을 최대한 가동한 점으로 미뤄 김 소령은 탈출을 시도하지 않고 끝까지 조종간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해군 관계자는 "김 소령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전우들을 살리고 헬기를 보존하고자 최후의 순간까지 악전고투했다"며 "조사관들도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해군은 "추락한 헬기 기체에 관한 조사 결과, 엔진을 비롯한 장비는 추락 직전까지 정상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기체 결함이나 정비 불량으로 인한 사고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군은 이번 사고 이후 전면 중단했던 링스 헬기 비행을 다음 주부터 재개할 방침이다.

해군은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막고자 링스 헬기의 함정 탑재와 관련된 안전 규정을 보완하고 헬기 여러 대가 참가하는 작전에는 경험 많은 항공연락장교를 현장에 파견하기로 했다.

헬기를 탑재하는 함정에는 정밀 기상관측 장비도 탑재할 계획이다.

우리 해군의 링스 헬기 1대는 지난달 26일 밤 북방한계선(NLL)과 가까운 동해상에서 미 해군과 함께 북한의 잠수함 침투 상황을 가정한 대잠훈련을 하던 중 추락했다.

이 사고로 김 소령을 비롯해 헬기에 타고 있던 승무원 3명이 순직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ljglo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