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헌법 개정 이후 개헌 논의는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때마다 정파 이해관계로 번번이 실패했다.

개헌론이 본격 등장한 것은 개헌한 지 불과 3년 만인 1990년이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민정당 총재)과 김영삼(YS) 민주당 총재, 김종필(JP) 신민주공화당 총재는 3당 합당을 하며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기로 하고 각서까지 썼다. YS가 대통령 출마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 내각제 개헌은 없던 일이 됐다. YS는 비공개 내각제 합의 각서 공개 이후 당무 거부를 선언하고 마산으로 내려가 칩거했고, 노 전 대통령은 내각제 포기를 약속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DJ)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JP는 후보 단일화 조건으로 내각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던 DJ와 내각제 소신을 가진 JP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이른바 ‘DJP 연합’이다. JP는 DJ가 대통령이 되면 1999년까지 개헌한다는 약속을 얻어냈으나 DJ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월 대국민담화에서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지만 박근혜 당시 전 한나라당 대표 등이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집권하면 개헌하겠다고 한 뒤 지키지 않았다.

18대 국회에서 국회의장 직속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설치됐고, 19대 국회에서도 여야가 의장실 산하에 ‘헌법개정자문위’를 뒀지만 추동력이 약해 개헌은 불발됐다. 헌법연구자문위는 ‘5년 단임 이원정부제’와 ‘4년 중임 정·부통령제’ 등 복수 개편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헌법개정자문위는 2014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했으나 여야 간 이견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