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농업법인으로 등록해놓고 다른 사업을 하는 ‘무늬만 농업법인’이 대대적으로 정비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전국 농업법인 실태 조사 결과 5만2293곳 가운데 1만1096곳을 적발해 시정 및 해산명령을 내릴 방침이라고 24일 발표했다. 1999년 정부가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영농조합법인을 지원하기 시작한 지 17년 만의 첫 실태조사다.

농업법인으로 등록하면 보조금을 받거나 법인세를 면제받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 농업법인으로 등록해놓고 전원주택 개발이나 부동산 매매업 등을 하는 사례가 상당수 적발됐다”며 “1880곳에는 해산명령을 내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태조사에 불응한 법인과 농업법인 유사 명칭을 사용한 법인 등 4239곳에는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무늬만 농업법인’으로 적발해 시정 및 해산명령을 내리는 곳(1만1096개)은 전체 농업법인의 20%가량에 해당한다. 등기부등본엔 농업법인으로 등록해 놓고 실제로는 다른 사업을 하면서 보조금을 받거나 법인세를 감면받은 ‘무늬만 농업법인’을 대대적으로 솎아내겠다는 게 농식품부 설명이다.
무늬만 농업법인 1만1000곳 걸러낸다
보조금 수백억 낭비

정부는 1990년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영농조합을 만들거나 외부 출자를 받아 농업회사를 세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농어촌특별조치법’을 제정했다. 이를 통해 농업법인이 농업 관련 사업을 하면 보조금을 주고 법인세를 감면 또는 면제해주는 혜택도 부여했다. 1999년엔 더 나아가 농업법인을 세울 때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해야 하는 의무 규정도 폐지했다. 농업법인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관리 감독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농업법인은 아예 실체가 없는 ‘유령회사’로 변질했다. 농식품부가 올 5~9월 조사를 한 5만2293개 농업법인 가운데 35%가량인 1만8235개소가 현재 운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개 휴업이나 폐업한 법인이었다. 소재가 불명한 곳(9097개소)까지 합하면 절반 이상(53%)이 실체가 불분명한 유령 농업법인이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천 울산 대구 전남 경남 제주 등 6개 광역자치단체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해 9월까지 해당 시·도에 등록된 226개 유령 농업법인에 흘러간 시설자금 등 보조금은 246억원에 달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6개 시·도만 조사한 것으로 전체로 확대하면 얼마가 될지는 집계 중”이라며 “해당 기간 법인세 면세까지 확대하면 이런 식으로 샌 돈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정에서 해산명령 청구까지

농식품부는 이번 실태 조사로 드러난 사항에 대해 법적 조치 등에 나서기로 했다. 조합원이 5명 미만임에도 영농조합으로 등록했거나 비농업인의 출자 비중이 90%를 초과하는 5288개 농업법인엔 시정명령을 하기로 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 등을 부과한다는 계획이다. 농업법인으로 등록하고 다른 사업을 한 1880개 법인에 대해선 해당 지자체가 법원에 해산명령을 청구하도록 했다. 농업법인이 아닌데 농업법인 유사명칭을 사용하거나 설립요건에 미응답하는 등 실태조사에 불응한 4239개 법인은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지자체가 법인에 통보하도록 했다.

변상문 농식품부 경영인력과장은 “지난해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정부의 농업법인에 대한 실태 조사에 대한 근거가 마련된 만큼 향후 3년마다 농업법인 실태 조사를 하겠다”며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급된 보조금을 환수하도록 후속 조치를 취하고, 면제받은 법인세도 추징 근거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