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전 외교통상부장관(현 북한대학원대 총장)의 회고록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빙하는 움직인다’라는 제목의 회고록 중 UN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참여정부가 기권을 하게 된 배경을 다룬 9쪽 분량의 증언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안보관 등 후보검증문제로 비화됐다. 2007년 11월 20일 유엔표결에 앞서 청와대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찬반격론을 벌였던 송 전 장관을 비롯해 문 전대표(당시 비서실장),이재정 전 통일부장관,김만복 전 국정원장,백종천 전 안보실장 등 당사자들의 증언은 엇갈린다.

쟁점은 기권에 앞서 북한에 사전 의견을 타진했는지 여부다.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는 기권방침을 최종 결정한 시점도 논란거리다.

문 전대표 등 4명은 “북측에 사후통보했을 뿐 의견을 구할 사안도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1대 4의 ‘진실게임’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회고록 공방은 송 전 장관이 19일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기록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있다. 송 전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당시 청와대 회의 관련 기록을 공개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게 좀 논란이 돼서 말씀드리는 것인데”라고 운을 뗀 뒤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양측의 공방은 당시의 정무적 판단과 기억에 의존하는 문 전 대표 등 4명과 꼼꼼한 메모와 기록 보관이 몸에 밴 외교관인 송 전장관의 ‘디테일’차이에서 이미 승부의 추가 기운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기자와 만나 “회고록을 낸 의도는 모르겠지만, 송 전 장관은 치밀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기억한다”며 “국민은 기억이 잘 안난다는 문 전 대표와 당시 상황을 줄줄이 꿰고 있는 송 전장관 중 누구 말을 더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문 전 대표는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기억이 잘 안난다”며 질문자체를 차단했다. 이 전 통일부 장관도 이날 한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기권한다는 것을 (북측에) 미리 알려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회고록은 11월16일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정식 논의된 시점부터 5일 동안 노 전 대통령과 4명 당사자의 관련 발언과 회의분위기 등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송 전 장관은 16일 노 전 대통령이 북한 김영일 총리와 회동한 뒤 결의안 찬성에 부담을 느끼자 A4용지 4장 분량의 친필 호소문을 심야에 전달했고, 대통령의 지시로 일요일인 18일 회의가 재소집됐다고 적시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북채널을 통해 의견을 확인해보자는 국정원장의 제의가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11월 19일 대통령을 수행해 싱가포르 출장길에 올랐던 송 전 장관은 그 다음날인 20일 대통령 숙소에 불려가 백 안보실장이 들고 있던 북측 ‘쪽지’를 건네받아 눈으로 확인했다. 쪽지엔 “결의안 찬성은 북남관계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북측 경고가 담겨있었다고 전했다. 이때 기권방침이 최종 결정됐다는 게 송 전 장관의 주장이다.노 전 대통령은 실망한 송 전장관에게 “찬성한 뒤 송 장관 사표를 받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는데..”라고 했다고 한다. 송 전장관이 곧바로 “국제사회에서 체면도 살고 북한 입지도 배려해주는 고육지책이 맞습니다”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은 “북한에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공기가 무거워서 안되겠네”하면서 침실로 향했다고 썼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