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쟁점화 총력…"종북 넘어 종노릇…北에 의견 묻고도 잡아떼기"
野 "권력게이트 시선 가리기 말라"…文 "朴정부, 盧정부에 배워야"
대선국면 초입 '이념전쟁'…'포스트 국감' 정국주도권 맞물려 격화

지난 2007년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서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사전 의견을 구하고 기권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여야는 주말인 15일 격렬한 공방을 벌였다.

여권은 당시 노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당시 표결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국기문란' 행위라며 날을 세웠고, 더민주는 여권이 내년 대선을 겨냥해 또 근거 없는 '색깔론' 공세를 편다고 일축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문 전 대표는 북한에 사전 의견을 구한 사실이 있는지에 대해선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 채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이 다수 의견에 따라 기권을 결정한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배우기 바란다"고 도리어 역공을 취해 양측의 공방은 한층 뜨거워졌다.

앞서 참여정부 외교·안보 정책에 관여한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최근 펴낸 회고록에서 "2007년 11월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노 전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뇌부 회의에서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의 의견을 물어보자는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의 견해를 문재인 당시 실장이 수용했으며, 결국 우리 정부는 북한의 뜻을 존중해 기권했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당장 새누리당과 더민주는 양당 대표가 전면에 나서 과격한 표현을 동원한 설전을 벌였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그 많은 국방 예산을 쓰고, 젊은이들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기에 시간을 들이고,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는데, 그 적들(북한)하고 내통해서 이런 식으로 한 것"이라며 문 전 대표가 사실상 북한 정권과 내통한 장본인이라고 몰아세웠다.

이 대표는 "인권을 탄압하는 주체, 인권 탄압을 못 하게 하려고 유엔이 결의하려는 그 대상한테 '이거 찬성할까요, 말까요'라고 의견을 구한 것"이라며 "국민 입장에서 이해가 안 가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처럼 '상식이 없는 짓'을 한 사람들이 대선에 출마해 다시 그 방식을 이어가겠다는 것 자체가 더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당시의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해 사실관계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자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이날 정청래 전 의원의 출판기념회 축사에서 "오늘 어이없게도 무슨 경상도 어머님들 말씀대로 '날아가는 방귀를 잡고 시비하느냐'는 식으로 개인 회고록을 붙잡고 국정조사를 하자고 한다"고 비판했다.

추 대표는 "해야 할 국정조사가 엄청나게 많은데 개인 회고록을 놓고 누구 말이 맞느냐 안 맞느냐로 국정조사를 하자는, 국정운영을 포기하는 절대 권력 집단을 보면서 이제 요즘은 코미디언도 돈 벌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남북관계를 하나도 풀지 못하면서 겨우 개인 회고록 붙잡고 시비나 벌이니 한민족의 통일을 포기한 세력이 아니라면 자중해야 한다"며 "더구나 지금은 민생도 경제도 바닥이고 대통령 주변의 도덕과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검찰은 부패하고 나라가 모두 총체적 난국 아닌가"라고 썼다.

양당의 '입'도 총동원됐다.

새누리당 염동열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대한민국의 일을 북한 정권으로부터 결재받은 것은 국기를 흔드는 충격적인 사태"라며 엄정한 대처를 강조했다.

박명재 사무총장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문 전 대표는 단순한 종북(북한을 추종함) 세력이 아니라 북한의 종복(從僕·시키는 대로 종노릇함)이었다"고 맹비난했다.

김성원 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이를 계기로 '대북송금 특검'도 본격 추진해야 한다"며 "왜 북핵 개발이 속도를 냈고, 북핵으로 우리의 존망이 위협받게 됐는지 명백히 밝혀내야 한다"고 언급,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까지 사정권에 넣었다.

이에 더민주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새누리당이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를 깎아내리고 권력 게이트에 쏠린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정치공세를 펼치는 것은 정말 후안무치하다"라며 "정상적인 대북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한 것이 왜 정체성을 의심받아야 할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당사자인 문 전 대표가 "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10·4 정상선언이 있었고, 후속 남북 총리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고 있었다"며 "외교부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찬성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통일부는 당연히 기권하자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엔 대부분 통일부의 의견을 지지했다.

심지어 국정원까지도 통일부와 같은 입장이었다"고 밝힌 대로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는 그러면서 노무현 정부가 주요 현안에 대해 '토론을 통한 의사결정'을 했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현 정부를 향해 역공을 취했다.

제2야당인 국민의당 관계자는 "사실 확인이 더 돼야 할 부분이 있다"며 아직 이 문제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 의혹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내년 대선을 겨냥한 정국주도권 경쟁과 맞물려 더 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감사가 마무리돼 본격적인 대선국면에 진입하면서 야권 유력주자인 문 전 대표의 '대북관'을 놓고 여야가 이념전쟁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8대 대선 때도 북방한계선(NLL) 논란을 겪은 바 있다.

특히 최근 미르·K스포츠재단 등 연일 불거지는 권력형 비리 의혹에 따른 지지율 하락에 고심하는 새누리당은 이번 의혹을 적극 쟁점화해 국면 전환을 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번 사건을 '대북결재 요청사건'으로 규정, 이날 오후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첫 회의를 열어 "국가의 중요한 국방과 안보에 관해 굉장히 엄중한 사건으로 본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홍지인 기자 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