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선 주자들이 앞다퉈 성장을 외치고 있다. 국민성장, 공정성장, 혁신성장, 공생성장, 더불어성장, 복지성장 등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이들은 자신의 성장론을 제시하며 경제 아젠다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성장 앞에 수식어를 붙인 것은 성장을 토대로 대선 화두인 양극화 해소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때 성장 전략과 경제민주화·복지 대책을 별개로 내놓으며 ‘투트랙 전략’을 썼던 것과 차이가 있다.
잠룡들의 'OO성장론'…그 속엔 '분배'가 숨어있다
다만 어떻게 성장시키겠다는 구체적 방안은 아직 없다. 양극화 및 격차 해소에 무게를 둬 성장은 선언에 그치고 분배에 더 기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성장론을 먼저 치고 나온 것은 야권 주자들이다. 중도층 잡기 성격이 강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6일 자신의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창립 준비 행사에서 “경제 패러다임 중심을 국가나 기업에서 국민 개인과 가계로 바꿔야 한다”며 “국민이 돈 버는 시대, 국민성장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승 ‘정책공간 국민성장’ 자문위원장은 “수출로 끌어가는 엔진을 민간 소비로 끌어가는 엔진으로 바꿔야 하고, 선(先) 성장 후(後) 복지 정책은 성장과 복지 병행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소비를 늘리면 대기업 매출이 늘어나 기업 소득도 증가하는 새로운 개념의 성장”이라고 설명했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분배를 통한 경제 성장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는 게 골격”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론이다.

공정성장론을 내놓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대·중소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풍토를 만들어주면 창업이 활성화돼 일자리가 많이 늘어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창업국가가 돼야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부겸 더민주 의원은 “수출과 대기업, 특정 제조업에 의존하는 경제 운용 방식을 수정할 때가 됐다”며 “이젠 더불어성장”이라고 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국가주도형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다”며 “공정한 시장질서, 공정한 사회체질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와 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주자들도 성장과 함께 양극화·격차 해소를 시대정신으로 제시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양극화 해소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경제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승민 의원은 “경제정의는 성장에 굉장히 중요하다. 재벌이 지배하는 구조에서는 혁신 기업 탄생이 잘 안되기 때문에 시장경제를 바꾸자는 것”이라고 자신의 혁신경제 취지를 설명했다. 문 전 대표의 국민성장에 대해선 “분배론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경쟁에서 공존으로 옮겨가야 한다며 공(共)·생(生)연구소를 열었고, 남경필 경기지사는 대선 화두와 관련해 “일자리와 불공정, 이 둘을 해결하는 게 국민행복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성장담론에 대해 비판도 나온다. 문 전 대표의 ‘국민성장’과 관련, 소득을 어떻게 늘리는가에 대해서는 구체적 방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선거를 앞두고 분배와 복지에 무게중심을 둔다면 자칫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안 전 대표의 창업국가를 통한 성장론에 대해선 “중소기업에선 기술력이 문제가 되는데 자칫 버블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 전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일각에서 말장난 같은 성장변형론들이 나오고 있다”며 “언어유희로 문제의 본질을 가려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