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곳 줄었으니 삭감해야지만 지방 의회는 요지부동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추진비가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 시행 이후 일부 지자체에서 잇달아 삭감되고 있다.

판공비로도 불렸던 업무추진비는 기관장과 간부들이 업무와 정책을 추진하는 데 사용하는 비용을 일일이 예산에 반영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편성하는 예산이다.

주로 이재민이나 소외계층, 각 분야 유공자, 현장 부서 근무자 등을 격려하는 데 사용한다.

업무와 관련해 유관기관의 협조를 구하고 정책을 홍보하는 데도 사용하는 등 그 범위가 넓다.

이 비용은 세부 명세를 공개하게 돼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알 수 없는 등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았다.

식대나 선물비, 경조사비 등으로 상당부분 지출되는 업무추진비는 청탁금지법에 의해 식사, 선물, 경조사 등에 지출한도가 설정되고 직무연관성을 따져 지출 대상도 엄격히 제한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집행액도 줄어들 것이라는게 법 시행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돼 왔다.

실제로 법 시행이후 각 지자체에서는 업무추진비 삭감 현상이 도미노처럼 확산하는 분위기다.

가장 먼저 테이프를 끊은 곳은 부산 기장군이다.

오규석 기장군수는 이달 8일 군 간부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내년도 군수 업무추진비를 한 푼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연간 5천280만원까지 편성할 수 있는 업무추진비를 전액 삭감하고, 그 예산을 '청렴 콜센터' 운영에 쓰겠다고 밝혔다.

부산시장도 업무추진비 삭감을 검토하고 있다.

올해 기준으로 기관업무추진비 1억9천800만원과 시책업무추진비 1억2천여만원 정도를 쓸 수 있는데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그 용도가 제한돼 사용처가 이전만 못 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강원도도 내년도 시책업무추진비를 총액 한도액인 15억9천400만원에서 10.3% 줄인 14억2천900만원을 편성했다.

1억6천500만원을 줄인 것이다.

도지사의 내년도 기관업무추진비도 1억6천720만원에서 50%나 삭감한 8천360만원을 편성했다.

인천시 역시 시장의 시책업무추진비(1억2천816만원)와 기관운영비(1억9천800만원)를 축소하기로 하고 관련 부서와 협의 중이다.

전북 전주시도 연간 1억2천여만원에 이르는 시장의 업무추진비를 어느 정도 삭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지자체의 업무추진비 삭감이 잇따르고 있다.

지자체의 이런 움직임과 달리 전국의 지방 의회가 업무추진비를 스스로 삭감하겠다고 나선 곳은 아직 없다.

광역의회 의장은 연간 5천40만∼6천360만 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있는데 전국 대부분 의회가 내년도 예산을 한도액에 맞춰 편성하고 있다.

부산시의 한 간부는 "내년도 예산 협의차 중앙부처 공무원과 식사를 했는데 정확하게 나눠내기를 했다"며 "이처럼 지방재정법에서 업무추진비 사용을 허용하는 곳에도 청탁금지법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는 등 사용처가 줄었다"고 말했다.

단체장의 업무추진비 삭감만으로 큰 의미를 둘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지자체에는 시장이나 구청장, 군수의 업무추진비 외에도 현업 부서에도 업무추진비가 별도로 편성돼 있어 이를 전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를 없애려 경기도 부천시는 내년도 시 전체 업무추진비를 21% 삭감하기로 했다.

부산 기장군 역시 현업 부서의 업무추진비를 올해의 3분의 1 수준에서 맞추기로 하고 예산편성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창수 김상현 임보연 김명균)

(전국종합=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