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기재부의 '쪽지예산 청탁시 김영란법 신고' 방침에 반발
김영란법의 '맹점 사례' 비판도

이른바 '쪽지예산'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에 저촉된다는 기획재정부의 입장표명에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앞둔 국회가 일대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국회의원들이 예산안 심사 막판에 끼워넣는 지역구 민원 예산을 뜻하는 쪽지예산은 국회 예산심의의 오랜 관행으로 굳어져왔다.

그러나 기재부가 쪽지예산과 관련한 청탁이 김영란법에 위반된다며 이를 신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정치권으로서는 당혹스런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주무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익목적 지역구 사업 등의 쪽지예산은 위법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린 상태여서 혼선이 더욱 가중되는 분위기다.

기재부 송언석 2차관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예산당국이 (쪽지예산의 공익성에 대해) 판단할 근거가 없다"면서 "법에는 공무원이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처벌 대상이 된다.

현장에 있는 예산 담당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판단할 근거나 권한이 없어 신고해야 하니 곤혹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구윤철 기재부 예산총괄심의관도 "쪽지예산의 공익성을 우리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공식 루트 외의 예산은 가능하면 막자는 게 예산실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일제히 반박했다.

예결위 새누리당 간사인 주광덕 의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권익위는 지역 전체를 위한 예산은 김영란법의 예외로 허용된다고 했다"면서 "예비심사가 끝난 상태에서 완전히 새로운 예산을 집어넣는 좁은 의미의 쪽지예산이든, 이미 예산에 포함된 내용을 증액하는 등 넓은 의미의 쪽지예산이든 김영란법에 저촉된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주 의원은 "과거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던 좁은 의미의 쪽지는 예결위 여야 간사들이 받지 않는 것으로 묵시적으로 합의돼 있다"며 "그런 쪽지예산은 국회에서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김영란법을 만들 당시 속기록에 그 문제(쪽지예산)에 대한 유권해석이 다 내려져 있는데, 기재부가 자기들의 예산권을 강화하기 위해 법을 지켜야 할 기관이 유권해석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원들도 이런 논쟁이 벌어지자 혼란스러워하며 일단 지역예산 민원 시 조심하는 모양새다.

기획재정위 위원장인 새누리당 조경태 의원은 김영란법 시행 초기이다 보니 권익위, 기재부, 사법부 등의 판단이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조 의원은 "권익위에서 시행규칙을 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에 따라 김영란법의 취지에 부합될 수 있도록 그 정신을 최대한 살리면서 입법부의 활동을 진행해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더민주 이개호 의원은 "지역구 사업에 대한 예산 요청은 예전에는 말로 했지만, 지금은 공문으로 보내고 있다"면서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하면 문제 될 게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예산결산특위 위원장인 더민주 김현미 의원은 "엄밀하게 쪽지예산은 작년에도 사라졌다.

위원장으로서 공식적으로 들어온 예산에 대해서만 편성을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면서 "공식석상에서 논의된 예산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쟁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김영란법의 취약성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9대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김영란법을 비판해온 더민주 이상민 의원은 "애매모호한 해석을 낳는 김영란법의 맹점과 결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김영란법은 각 주체가 법 취지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해 무력한 법으로 전락하거나, 모든 주체가 다 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오는 위험한 법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서혜림 현혜란 기자 lkb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