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 농업해양수산식품위원회 소속이었던 A국회의원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한 공기업에 질의서를 보냈다. 질의서를 받아든 공기업 경영진은 화들짝 놀라 임원 한 명을 의원실로 급파했다. 내부의 민감한 문제여서 공개하기 힘든 현안이었기 때문이다. 임원이 상황을 조목조목 설명하자 A의원은 의외의 제안을 했다. 이 공기업에서 일하는 자신의 지인을 승진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이 공기업은 질의 수위를 낮춘다는 약속을 받고 A의원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2016 대한민국 갑질 리포트] 삥뜯기, 황제 의전, 떼쓰기…국회의원이라 쓰고 '절대갑'이라 읽는다
지역구 사업 자금에 후원금까지 강요

19대 국회 상임위원장이었던 B의원은 기업 관계자들을 수시로 국회로 호출해 기업 내부의 사소한 문제점까지 시시콜콜 꼬투리를 잡았다. 알고 봤더니 자신의 지역구에 기업 연수원을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이 의원의 등쌀에 못 이긴 기업들은 대책 회의를 열고 지원 자금을 마련했다. 당시 이 의원에게 불려갔던 기업 담당자는 “보좌관이 의원과 잘 지내려면 알아서 잘하라는 얘기를 수시로 하며 협박하다시피 해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출판기념회를 빙자한 후원금 모금도 국회의원들의 대표적 갑질 수단 가운데 하나다. 몇 년 전 C의원은 출판기념회로 엄청난 후원금을 거둬들여 원성을 샀다. 그가 주최한 출판기념회엔 정·재계 인사뿐만 아니라 수백 곳에 달하는 기업 대관 담당자들이 참석했다. 그들은 책값을 명목으로 후원금을 두둑이 냈다. 한 대관 담당자는 “1만5000원짜리 책 한 권을 사는데 최소 100만원씩은 썼다”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일부 대관 담당자는 행사가 끝난 뒤 보좌관한테 불려가 “국감을 무사히 넘기려면 성의 표시를 더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자리에 있었던 한 대관 담당자는 “생각보다 돈이 적게 들어왔는지 따로 불러 돈을 더 내라고 했다”며 그때 상황을 전했다.

19대 국회 말미에 비판이 거세지며 요즘은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이런 와중에도 ‘변형 출판기념회’를 여는 국회의원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황제 의전’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 중 하나가 의전이다. 사소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일반 국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지난해 지방에서 열린 국감에 참석하기 위해 KTX를 타고 이동했다. 역에 도착하니 의전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방자치단체가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의원들이 도청까지 이동할 때 경찰 차량 두 대가 선도했다. 도착하니 시장, 행정부지사, 실·국장들이 내려와 기다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국감을 하는데 이런 요란한 의전이 왜 필요하냐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의원들은 피감기관이 알아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해명한다. 특권인지조차 모르고 당연시하는 것이다. 올해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맞아 의원들 스스로 자성에 나섰다. 안행위원들은 의전 특권을 내려놓고 국감에만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 지방에서 하고 있는 안행위 국감에선 식대와 칫솔 등 비용을 국회 행정실에서 지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황제 의전은 여전히 존재한다. 공항 의전이 그중 하나다. 국회의원들은

공항 내 전용 통로와 의전실을 통하면 별도 창구와 수속을 밟는다. 의전실과 연결된 주차장을 이용하면 빠르게 비행기에 오르고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다. 의원들은 비행기 출발 30분 전에만 도착해도 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황제 의전으로 비판이 쏟아지는 데도 정부는 최근 김영란법 시행 직전 관련 규칙을 개정해 의원이 귀빈실 이용을 할 수 있도록 해 빈축을 샀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의원 갑질을 비판하며 개선책 마련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이슈에서다.

김영란법 비껴간 슈퍼갑

김영란법 시행에 400만명이 몸을 사리는 상황에서도 국회의원들은 예외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국회의원들도 ‘3·5·10룰(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한도)’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선출직 공직자라는 이유로 ‘공익적 목적으로 민원을 전달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예외조항을 만들어 교묘히 빠져나갔다. ‘공익적 목적’이라는 표현이 모호하다 보니 유권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셈이다. 국회의원들은 화훼, 농축산 농가 등의 피해를 우려해 김영란법 개정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다음 선거를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법이 시행돼 지역민, 지인들의 인사 청탁 등 민원 요구가 확 줄어들자 오히려 편해졌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