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윤병세 장관의 '러닝머신 외교'
오준 주유엔 대사 교체가 결정된 것은 지난달 13일이었다.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하고 나서 나흘 뒤였다. 기자들에게 아그레망(주재국의 임명동의)을 이유로 보도유예를 요청한 날짜가 이날이다. 실제 본인에게 통보가 이뤄진 시점은 북한 핵실험 직후로 보고 있다.

지난달 유엔 총회에서 대북 제재를 마련하는 긴박한 외교전이 벌어질 당시 오 대사는 퇴직이 결정된 상태였다. 물론 북핵 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 대응이 주유엔 대사 한 명에게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 대사도 38년간 외교관 경력을 끝내고 이달 말 퇴임하지만 여전히 업무에 여념이 없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뉴욕특파원 간담회에서 주유엔 대사 교체와 관련해 “여러 가지 고려사항이 있었다”며 “업무 차질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 유엔 사무총장이 선출되는 시점에 맞춰 대사를 교체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문제는 한국의 외교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불안한 시선이다. 현지에서는 이를 ‘러닝머신’ 외교로 불리는 윤 장관의 업무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본인은 러닝머신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고 있지만, 제자리걸음만 하면서 정작 목표에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유엔 총회 방문 결과를 설명하는 간담회에서 윤 장관이 꺼낸 첫마디는 “(스스로)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였다. 10여차례의 양자회담을 비롯해 각종 다자회의와 고위급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등 숨가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는 자평이었다. 외교부는 윤 장관이 대통령과 5년 임기를 같이하는 첫 외교수장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장관 본인도 특파원들에게 “내년 유엔 총회에서 다시 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외교부 안팎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외교부가 장관 ‘1인 플레이’에 치중한다는 비판과 함께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래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뚜렷한 성과를 낸 장관이라는 타이틀이 더 값지지 않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감행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안보리는 결의안 초안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