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의회주의 쐐기 박아야" 형사고발도 유지
더민주 "얘기할 가치도 없어"…국민의당 "우선순위 아니다" 선회
백남기 특검법·예산 부수법안 등 여소야대서 충돌 불가피

여야가 4일 국정감사를 정상화 하기로 하면서 일주일간의 파행이라는 급한 불은 일단 진화했지만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는 못한 상태이다.

특히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규정하고 위반시 이를 처벌하는 이른바 '국회의장 중립법'(국회법 개정)이 언제든지 재점화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이 법안을 추진 중인 새누리당은 일단 극한 대립을 끝내고 정상화를 꾀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정세균 방지법'이라는 자극적 표현을 삼가고 있지만, 이를 관철시켜야 한다는 의사 만은 여전히 강하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상임위원장단·간사단 연석회의에서 "국회의장이 심판이기를 거부하고 선수로 뛰려 한다면 여당은 심판과 한편이 된 야당과 시합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면서 "국민의당이 국회법 개정을 적극 검토하기로 한 만큼 더불어민주당도 논의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국회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제1, 2야당의 틈새도 벌려놓으려는 이중 포석이다.

박명재 사무총장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정 의장은 개회사에서도 야당의 일방적인 주장만 늘어놨다"면서 "국회법 개정에 야당 일부도 동조하는 만큼 이참에 통과시켜 의회주의 복원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는 정 의장을 상대로 한 형사고발이나 권한쟁의심판도 취소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앞서 지난달 29일 농림축산식품부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 과정에서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명예훼손 혐의에, 의원들의 의결권도 제한했다며 중앙지검과 헌법재판소에 각각 소장을 제출했다.

앞으로 야당이 원내 의석수의 우위를 바탕으로 여당을 압박할 때 맞설 카드로 제시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미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은 백남기 사망 사건 특별검사 도입에 합의했다.

여기에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의 문제를 다시 꺼내 들고, 미르·K스포츠재단을 포함한 권력형 비리 국정조사와 상임위별 청문회를 상시화하는 국회법 개정안 등을 요구할 수도 있다.

새누리당이 국회의장의 중립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연말 예산 국회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회법(85조)은 예산안의 자동부의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실제 본회의에서 처리하기 위한 상정 권한은 의장에게 있다.

더군다나 예산 처리에 필수 조건인 세입예산안의 부수 법률 지정 권한도 의장이 갖는다.

국회법을 문구대로 해석한다면 정부의 예산안 처리를 막을 수도 있고, 반대로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법인세 인상을 포함한 세법 통과도 부수 법안으로 포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요컨대 여당으로서는 이번에 정 의장을 단단히 묶어 운신의 폭을 좁혀 놓음으로써 예산 정국에서 예상되는 변수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의장은 전날 호주 출국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모든 입법은 발의되면 상임위에서 논의하고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서 처리된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로는 상임위 통과조차 쉽지 않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완곡한 거부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더민주는 국회의장 중립법 주장은 국감 파행의 책임을 정 의장에게 떠넘기기 위한 정치공세로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못 박았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얘기할 가치도 없다.

무시전략"이라며 "여당에서 의사진행의 중립성을 말하는 건데 의장은 심판이 아니고 사회자다.

그냥 법에 정해진 의사진행을 하는 것이기에 사상과 신념의 중립을 지키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전 의장들도 사회를 보면서 중간중간 자신의 정책적 견해를 말한 적이 있어 항의한 적이 있었지만 의사일정을 중단시켰던 적은 없다"며 "여당의 국회의장 중립법 주장은 국감 파행 책임을 정 의장에게 떠넘기기 위한 것으로, 실질적으로 진전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해철 최고위원도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현재도 국회의장 중립성에 대해선 많이 보장돼있다"며 "어떤 법을 만들 때 계기나 근거가 타당해야 정치적으로 응할 수 있는데 이번 일에 대해선 정 의장이 정치적 중립을 위반한 게 없다"고 반박했다.

국민의당은 당초 새누리당과 더민주를 동시에 압박하기 위해 국회의장 중립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국감이 정상 궤도에 올라서자 '보류'로 돌아섰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금 국회가 잘 됐는데 그걸(국회의장 중립법) 가지고 티격태격하면 되겠느냐"면서 "지금은 좀 더 국감에 매진하고 3당 대표들이 한번 논의해보자는 유보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원내대표는 다만 "차기 어느 당에서 누가 국회의장이 될지 모른다.

법조문에는 당적 이탈 조항만 있고 중립성 의무가 없다면 (법 개정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국정감사가 끝나면 이 법이 왜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떻게 개정해야 할지 논의할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의 우선순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연합뉴스) 안용수 이정현 박수윤 기자 aayy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