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그룹 ‘프롬(FROM)100’의 출범이 각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기존 싱크탱크와 달리 정부나 기업, 특정 정치조직과도 거리를 두겠다고 선언했다. 과학기술과 정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뭉쳤다는 점도 특징이다. 국내 이슈에 갇혔다간 제4차 산업혁명과 같은 세계적 흐름을 놓칠 수 있다고 이들은 경고했다. 구조개혁을 통해 근본체질을 바꾸는 것만이 해답이라고도 강조했다.
[지식인 100인의 호소] "긴 호흡 경제정책도 여야 싸움에 좌지우지…정치논리 벗어나야"
◆“학문의 칸막이 넘자”

4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창립총회를 여는 사단법인 프롬100은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이 대표를 맡는다. 2012년 연세대 총장에 선임돼 대학 개혁에 힘쓴 그는 최근 정년퇴임하고 한국생산성본부 고문을 맡았다. 구조조정 등 경제현안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묶일 때마다 제언을 아끼지 않았던 그다. 이날 발표되는 프롬100의 첫 번째 제언인 ‘경제의 탈정치화’는 그가 늘 강조해온 원칙이다.

정 전 총장 외에도 이공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이 가세했다. 준비 과정에 관여한 김범수 연세대 교수는 “경제 사회 분야만 연구해선 세계적인 변화에 보조를 맞출 수 없다”며 “전공의 칸막이를 벗어나 학제적 논의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프롬100은 △경제산업 △과학기술 △정보 미디어 △교육 문화 △보건 복지 △거버넌스 안보라는 여섯 가지 분야를 아우르기로 했다. 의제는 정치논리 대신 연구 성과에 기반해 선정하기로 했다. 실제 정책에 반영되게끔 한두 달에 한 번 보고서도 제출할 계획이다.

◆정보통신포럼이 주축

새로운 싱크탱크 설립엔 1년여의 준비 기간이 걸렸다. 첫 논의는 지난해 정보기술(IT) 연구모임인 정보통신포럼에서 이뤄졌다. IT란 단어조차 생소하던 1994년 당시 경제학과 교수이던 정 전 총장이 주도해 설립한 포럼이다. 이광철 홍익대 교수, 왕규호 서강대 교수 등 50여명의 회원이 정보 통신 외에도 산업정책 등 다양한 연구를 해왔다.

한 관계자는 “로봇 기술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세계가 급변하고 있는데 한국은 전략조차 없다는 위기감이 회원들 사이에서 컸다”며 “포럼 회원이 주축이 돼 각계 전문가를 만났고 지난 3월 준비위원회를 꾸렸다”고 말했다. 프롬(FROM)이란 이름은 미래(future) 위험(risk) 기회(opportunity) 제안(movements)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들었다. 미래 사회가 당면한 위험과 기회를 분석해 현실적인 제안을 내놓자는 의미다.

지식인 100인부터(프롬100) 당장 논의를 시작하자는 뜻도 담았다. 저성장과 양극화 등으로 한국 사회가 기로에 섰지만 장기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위기감에서다. 경제를 이끌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내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서지만 출산율은 주요국 최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긴 호흡이 필요한 정책들은 전문가 대신 여야의 싸움에 맡겨졌다.

◆“신산업 규제 혁파부터”

프롬100의 지식인들이 ‘정치 이념 대신 경제 논리로 경제정책을 짜자’고 제언한 배경이다. 구체적 해법 또한 정부나 국회보다 민간경제의 역량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들은 10대 제언에서 신산업을 개발하고 노사관계와 투자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을 주장했다. 신산업 분야만이라도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4일 창립총회를 앞두고 내놓은 ‘기업과 산업 구조개편 방안’에서 “정부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구조개혁의 컨트롤타워를 상시 가동하고 사전적인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소외 계층을 위해 기회의 사다리를 강화하는 방안도 논의하기로 했다. 취약 계층을 위해 대학 입학정원 할당제도를 확대하고, 소득여건을 고려한 장학제도를 전면 도입하는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인구 감소에 따라 고령층이 노동시장에서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