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위상 상징하던 화환·하객·조문객 수 '뚝'…축제장 공짜 한우 사라져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첫 주말 결혼식장과 장례식장, 축제·행사장에 눈에 띄는 변화가 감지됐다.

공직자를 비롯해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 본인과 가족의 결혼, 장례 등 경조사에 진열된 화환 수가 크게 줄었고, 하객과 조문객 수도 전반적으로 감소한 모습이었다.

◇ 사라진 화환 벽…"빈소에 일주일 간 2개 배달"
1일 발인한 광주광역시 한 고위공직자의 부친상 빈소에는 화환이 눈에 띄게 줄었다.

2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결혼식장에서 열린 검찰 직원 가족의 예식에는 축하 화환 4개만 진열됐다.

오랜 동안 우리 사회에는 경조사에 진열되는 화환 수가 그 사람의 사회적 위상을 가늠하는 잣대로 인식돼 수십개의 조화가 벽을 가릴 정도로 길게 줄을 잇는 게 상례였지만 달라진 모습이이었다.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장례식장에 머무는 시간도 예전에 비해 짧아졌다.

일부 공직자는 상주와 인사만 나누고 식사도 생략한 채 장례식장을 떠나는 모습이 상당수 목격됐다.

한 조문객은 "최근 상(喪)을 당한 다른 국장급 간부의 상가와 비교했을 때 조문객이 어림잡아 3분의 1로 줄어든 것 같다"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우려했는지 조의금만 전달하고 나오는 공직자들도 많아 상가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2일 전북 시내의 한 예식장에서는 고위공직자의 이름이 적힌 화환을 한 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예식장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 전보다 화환 수가 절반은 줄어든 것 같다"면서 "5만원이 넘는 화환을 주고받는 것이 주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문제될 수도 있다는 인식 때문에 몸조심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빈소 3곳이 차려진 충북대병원 장례식장에도 화환이 각각 10개 안팎에 그쳤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예전에는 웬만한 상가마다 20개가 넘는 근조화가 진열됐는데, 김영란법 이후 절반 넘게 줄었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유모(56)씨는 "1주일이면 5∼6개씩 근조화 주문이 들어왔는데, 김영란법이 시행된 28일 이후 오늘까지 겨우 2개 배달했다"면서 "상주에게 부담이 될까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화환 보내기를 매우 꺼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전에서 열린 언론사 기자의 결혼식 피로연장에는 공직자나 기업 홍보팀 관계자들의 모습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한 홍보팀 관계자는 "김영란법 때문에 주변 눈치도 보이고 부담스러워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에 만나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축의금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3일 자녀의 결혼식을 앞둔 인천의 한 구청 간부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청첩장을 돌리는 대상을 최소화했다.

이 간부는 "직원들끼리는 축의금 한도를 넘을 일이 없지만 김영란법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어 하객은 친인척 위주로 초대하고 청첩장은 교회 지인 등 40여 명에게만 돌렸다"면서 "만약 법에 저촉되는 축의금이 접수되면 바로 신고하기 위해 관련 절차도 꼼꼼히 알아봤다"고 말했다.

◇ 한우 사라지고 국밥 대접…공짜 줄이고 없애고
가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지방자치단체 축제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나타났다.

1일 강원도 홍천에서 개막한 인삼·한우 명품축제에는 초청 대상자에게 제공하는 식사를 한우 고기에서 국밥으로 바꿨다.

명색이 '인삼·한우 축제'여서 그동안 개막식 초청 참가자에게 한우 고기를 제공해 왔지만 김영란법에 저촉될 수 있어 메뉴를 문제 소지가 없는 국밥으로 변경한 것이라고 축제 관계자는 설명했다.

횡성한우축제도 마찬가지로 초청 인사들에게 제공해오던 한우 고기를 한우 비빔밥으로 조정했다.

경북 봉화군이 주최하는 봉화송이축제와 충북 청주시의 청원생명축제는 환영연회와 만찬을 아예 취소했다.

청주시 관계자는 "음식값은 1인당 3만원에 미달하지만 김영란법에 저촉된다는 감사 부서의 지적에 따라 만찬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주최하는 대형 행사에서 자주 논란이 된 초대권 문화는 완전히 달라졌다.

6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지역의 주요 기관장과 인사들에게 개폐막식 입장권을 1인당 2매씩 제공했는데, 올해는 김영란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어 1인 1매씩 배부하고 있다.

그러나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들은 이마저도 불편하다며 티켓 수령을 거절하고 있다고 조직위 측은 전했다.

지난달 29일 개막한 광주 대표 도심축제인 충장축제를 준비한 광주 동구도 김영란법 위법 소지가 있는 선물·만찬을 없애거나 대폭 축소했다.

구 관계자는 "다른 지자체 관계자 등 초청자들에 대한 선물을 올해부터 없애고 만찬 행사도 가급적 피하면서 필요하면 간식 위주의 스탠딩 형식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신민재 손상원 이해용 박병기 박창수 박정헌 최수호 김용태 강영훈 김준호 백도인 박병기 기자)


(전국종합=연합뉴스) sm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