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에서 활동 중인 관료 출신이 정부세종청사의 선후배를 바라보는 감정은 복합적이었다. 한때 국가를 이끌던 중앙부처 관료의 위상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는 현실에는 답답함과 안쓰러움이 공존했다. ‘공무원의 실상’을 깨닫지 못하는 것에 답답해 했고, ‘힘과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모습’에는 안타까워했다.

최근 몇 년간 민간으로 떠난 전직 관료 7명을 한국경제신문이 개별적으로 만나 인터뷰한 결과다. 가감없는 말을 듣기 위해 이름은 물론 출신 부처와 행시 기수, 현재 일하는 회사 등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세종시 이전 4년-길 잃은 관료사회] "전문가 만나 정책 만들던 공무원들, 요즘엔 네이버부터 찾더라"
◆보고서에 매달리는 공직사회

대기업에서 일하는 경제부처 출신 A씨는 “민간에 나와 가장 놀란 것은 민간이 정부에 별로 기대하는 게 없다는 점”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공무원에 대해 그렇게 욕을 많이 하는지 몰랐는데, 처음엔 공무원 출신으로서 굉장히 불편했다”며 “하지만 민간에서 일을 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그때 내가 합리적인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다”며 “정부가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고 발표한 뒤 현장에선 바뀐 게 하나도 없는데 공무원들만 바뀌었다고 믿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부처 출신인 B씨는 “민간 기업에선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최고경영자(CEO)한테도 구두로 보고하는 경우가 많다”며 “관료로 일할 땐 무슨 일이든 항상 보고서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업무 처리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보상만큼 책임도 크다”

민간으로 나온 이후 만족도는 어떨까. C씨는 “일한 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 민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다. C씨처럼 민간으로 이직한 관료들은 대부분 ‘성과 보수’에 만족을 나타냈다. 공직이 불만족스런 첫 번째 이유가 ‘낮은 보수’라는 설문 결과와 일치하는 대목이다.

보수가 높은 만큼 업무 강도는 공직에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D씨는 “공무원이 과정을 중시한다면 여기(민간)선 결과만 평가한다”며 “공무원일 땐 추진하는 일이 잘 안 되면 소주 한 잔으로 털어버리면 됐지만, 여기선 자리가 날아간다는 압박감이 언제나 있다”고 했다. D씨는 “경제적으로 나아졌지만 공익이 아니라 사익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다는 게 신분이 바뀐 뒤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이라고 했다.

◆“일 생기면 네이버부터 찾더라”

관료들이 ‘세종섬’에 갇혀 있다는 지적에는 대체로 동의했다. 몇 년 전 경제부처를 떠난 E씨는 “지금 과장이 하는 일은 예전엔 사무관이 하던 일”이라며 “세종시 이전 후 정책 품질과 수준이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F씨는 “예전엔 사무관한테 일을 시키면 곧바로 시장 전문가를 섭외해 그럴듯한 보고서를 써냈지만 세종으로 내려간 뒤엔 사무관한테 일을 시키면 네이버부터 띄우더라”며 “후배를 교육하고 바로잡아줄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고 했다.

관료들의 마음이 떠나는 데는 비대해진 국회 권력 탓이 크다는 지적도 많았다. “국회를 찾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관료의 주업무가 됐다”거나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책이 국회의 정치 논리에 막혀 무산될 때마다 무기력함을 느꼈다”는 등의 얘기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이들도 관료조직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한결같이 “관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명의식을 떠올리며 스스로 최면을 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선 보수를 더 올려줘야 한다는 의견(A·G씨)도 나왔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스스로 철회했다. B씨는 “평생 직장이 없는 시대에 반드시 관료 조직에 뼈를 묻겠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김재후/김주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