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의 데스크 시각] 유일호는 마무리 투수일까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정치인 장관’으로 부르는 건 좀 그렇다. 재선 의원 출신이지만 20년간 학자, 연구원으로 보냈다. 성품도 학자풍에 가깝다. 하지만 그가 박근혜 정부 임기 후반 ‘마무리 투수’로 기용된 건 정치인 장관으로서의 역할이 더 크게 요구됐기 때문이다. 올초 3기 경제팀 수장을 맡았을 때 그의 어깨는 무거웠다. 노동개혁을 비롯한 4대 부문 구조개혁은 물론 기업 구조조정 등 과제가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국회를 상대해야 하고, 시장을 설득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그도 취임 당시 ‘순둥이’라고 언론에서 붙여준 별칭이 싫었던지 “개혁의 백병전도 불사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취임 후 ‘강단 있는 정치인 유일호’는 없었다. 한국형 양적완화 논란이 벌어졌을 당시엔 논쟁을 주도하지 못하고 끌려다녔다.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과정에서는 두 달을 모호한 입장으로 우물쭈물하며 보냈다. 이 과정에서 부총리가 기재부 예산라인조차 장악하지 못한다는 말까지 들렸다.

존재감 없는 부총리

최대 현안인 기업 구조조정에서 유 부총리의 존재감을 찾기는 더더욱 어렵다. 지난 몇 개월간 구조조정 이슈를 대하는 유 부총리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에게 구조조정의 절박한 의지가 정말 있긴 한 걸까’라는 의문을 가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6월 초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이후 지난 3개월간 유 부총리가 중심을 잡고 방향을 제시한 적은 없었다.

어찌 보면 구조조정을 정치인 장관한테 맡겨 놓은 것부터가 임명권자의 잘못된 판단일 수 있다. 구조조정은 기업을 죽이냐, 살리냐의 문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일자리가 날아갈 수 있다. 정치적이고 정무적인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많다. 그만큼 실패 확률도 높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에서 큰 구조조정을 추진할 때는 ‘칼잡이’ 역할을 정치인보다는 강단 있는 관료에게 맡겼다. 이명박 정부 때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맡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땐 사전에 청와대에 보고도 안 했다. 전광석화처럼 해치우지 않으면 여기저기서 감 놔라 배 놔라 간섭이 들어와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에 모든 것 걸어야

지난주 이틀간 서별관 청문회를 지켜보는 내내 답답했다. 여야 의원들이 책임론을 거론할 때마다 유 부총리는 “정부가 전면에 나서 할 수 있는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말만 되뇌었다. “구조조정이 한창인데 현장에 있어야 할 장관들을 불러 책임부터 따지는 것은 오히려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것이다”는 소신 발언이라도 한 번쯤 하길 기대했지만, 그런 결기는 보이지 않았다.

유 부총리는 요즘 들어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청와대의 실망도 큰 눈치다. 대통령의 한 측근은 “스타일이 그런데 어쩌겠냐”고 했다. 부총리의 대통령 주례보고도 한 달에 한두 번으로 줄었다고 한다. 일각에선 그의 ‘마무리 투수’ 역할에 회의론을 던지는 시각도 있다.

박근혜 정부의 남은 임기는 사실상 올해 말까지다. 넉 달이 채 남지 않았다. 4대 구조개혁은 이 정부에서 못하면 다음 정부에서 하면 된다. 하지만 구조조정은 당장 우리 경제의 생사가 달린 문제다. 유 부총리가 이걸 제대로 마무리하면 역전 만루 홈런이 될 수 있다. 그 ‘한 방’을 유 부총리가 보여줄 수 있을까.

정종태 경제부장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