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 폭로에 호통·막말 되풀이…'행정부 견제' 무색
'국감 스타'는 옛말…"'한탕주의' 환상 버리고 '예습' 철저히"

국회의 '가을걷이'인 국정감사 계절이 돌아왔다.

국감은 6월 항쟁의 성과로 민주화 시대가 도래한 후 1988년 부활해 올해가 29년째다.

국민을 대표해 행정부를 감시·견제하는 국감은 법안 및 예산안 심사와 함께 입법부의 핵심 기능이다.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은 국감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국회를 통과한 법안·예산을 반영해 연간 업무계획을 짜고, 실행 결과를 이듬해 국감에서 또다시 점검받는다.

그러나 국감을 고리로 한 입법부와 행정부의 선순환 구조는 어느샌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원리가 됐다.

숱한 '스타 의원'을 배출하고, 때로는 집권 세력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국감장은 되풀이되는 호통, 구태, 막말이 뒤섞여 희화화된 지 오래다.

지난해 국감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유대운 의원은 강신명 경찰청장에게 모의 권총을 건네며 주머니에 넣었다가 꺼내 격발하는, 서부극의 권총 결투 같은 시연을 요구했다.

2012년 국감에서 육군 중장 출신의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은 "군 지휘부는 모두 일어나라"고 한 뒤 "여러분은 선거 후 통수권자가 바뀌어도 그 명령을 받들어야 한다.

이게 맞으면 앉고 틀리면 서 있으라"며 '단체 기합'을 줬다.

2010년 국감에서 한나라당 김성태 의원은 이건우 문화재청장에게 "이 무식한 사람들아. 청장은 앉아서 답할 자격이 없다.

발언대로 서라"고 호통쳤다.

같은 해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조홍희 서울지방국세청장에게 "이런 자장면이 어디 있느냐"며 조 청장을 '음식'에 빗댔다.

의원들의 '꼴불견' 행태와 함께 해마다 지적받는 국감의 문제점은 '묻지마' 자료 요구와 증인 채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앙부처 간부는 1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한 초선 의원실 보좌관으로부터 '해방 이후의 관련 자료를 모두 달라'고 요구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19대 국회에서도 같은 요구를 받았다"고 했다.

지난 2012년에는 한 금융 공공기관이 국감 자료라는 명목으로 약 500쪽 분량의 외국 전문서적을 번역해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직원들은 밤을 새워 번역에 매달렸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2012년 3천699명이던 국감 증인은 2014년 3천761명으로 늘었다.

지난해는 4천173명으로 사상 최다 규모로 늘었다.

국감 대상 기관은 2012년 559개에서 지난해 712개로 증가했다.

수백개 기관에서 증인 수천명이 불려 나오고,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더라도 답변 자료를 즉석에서 만들어 장관에게 건네기 위해 사무관까지 동원돼 국회 복도에 진을 치고 있다.

온종일 국감장에 '병풍'처럼 앉아있던 증인이 한 마디 질문조차 받지 않고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저인망식 자료 요구, 불러놓고 보는 식의 증인 요구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자료·증인 요구는 피감기관에 대한 '군기 잡기' 용도도 있다.

한 대기업의 대관 담당 임원은 "한 의원실 보좌관이 '회장님을 일반증인으로 요구하겠다'고 알려오더라. 추석 앞두고 '신경 좀 써달라'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일반증인은 의원들의 요구를 취합해 여야 간사가 비공개로 결정한다.

여야 중진 의원들은 '준비 부족'을 부실 국감의 이유로 꼽았다.

국감을 코앞에 두고 준비하다 보니 자료만 받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자료 분석이 부실하니 '일단 튀고 보자'는 심리에 무리수를 두거나 함량 미달의 질문만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5선)은 "국감에서 돋보이고는 싶은데 준비가 부족하면 '뭐라도 하나 걸리겠지'라는 마음으로 자료와 증인을 요구하게 된다"며 "독재정권 직후에는 '스타'가 나올 수 있었지만, 정보가 차고 넘치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깊이가 있어야 송곳 같은 질문으로 핵심을 찌른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5선)은 "올해로 17번째 국감을 하는데, 지금까지 신청한 증인은 2∼3명뿐"이라고 했다.

그는 "언론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준비가 부족한 의원도 문제고, 어떻게든 국감만 넘기고 보자는 피감기관의 안일한 태도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30년 가까이 된 국감의 제도와 관행부터 바꿀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수시로 국정 현안을 점검하는 '상시 국감', 대상 기관을 분산하고 정기국회는 예산 심의에 집중하는 '분리 국감'을 정착시키는 동시에 증인 채택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회의에 앞서 상임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협의해 증인 출석을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국감이 2주일 동안 모든 걸 쏟아붓는 이벤트성으로 치러지는 게 문제"라며 "'상임위 중심주의'가 정착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용화 정치평론가는 "국회는 수시로 정부를 감시·견제해야지 특정 시기에만 불러서 호통치고 언론에 보여주는 데만 급급하면 '한탕주의 국감'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서혜림 기자 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