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불복 형태의 국정 반대 멈추자" 이치며 '西進' 전략 담아
30여년간 경험 토대로 국회 갑질·구태 지적하며 '반성문'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5일 첫 국회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가장 강하게 방점을 찍은 분야는 국회개혁이었다.

이 대표는 또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에 비협조적이었던 점도 명시적으로 사과했다.

보수 정당사에 호남 출생의 첫 당 대표가 등장하면서 나타나는 변화로서 내년 대선 전략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민이 주도하는 국회 개혁 = 이 대표는 국민의 의견을 빌리기는 했지만 국회의원을 나라를 해롭게 한다는 의미의 '국해(國害) 의원'이라고까지 불렀다.

1948년 제헌 국회 이래 70년 가까이 된 현재의 국회가 악순환을 반복한 것은 '셀프 개혁'에 머물렀기 때문이라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과거 국회개혁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 "환자가 스스로 진단하고 스스로 처방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고질적인 국회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 국민에게 메스를 넘겨주자는게 이 대표의 메시지다.

이 대표가 해법으로 제시한 방안은 '헌정 70년 총정리국민위원회' 구성이다.

국회가 아닌 국민주도로 국회 구석구석을 살피도록 함으로써 혁명적인 개혁 방안을 도출하자는 의미다.

예컨대 민간 전문가를 상임위, 국회 사무처 등 곳곳에 배치해 1년 단위로 반복되는 예·결산 통과 과정을 심의단계부터 현미경을 통해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졸속 심의와 예산 누수라는 악순환을 막자는 취지다.

이 대표는 특정 정당에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 아닌 만큼 국회 운영위에서 여야 합의로 선발 기준과 규모, 활동 기한 등을 정하자고 제안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국회의원의 '갑질', '구악 행태'를 속속들이 지적했다.

지난 1985년 국회의원 비서를 시작으로 밑바닥부터 30여년 정치권에 몸담았던 경험을 토대로 한 울림이었다.

이 대표는 "저를 포함한 상당수 의원은 툭하면 공무원을 하인 다루듯이 삿대질하고 고성질타로 윽박질렀다"면서 "경제인들을 하루종일 국회에 불러 대기시키고 단 1분도 질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걸음걸이, 말의 속도, 말투조차 달라지더라"며 반성문을 쓰기도 했다.

특히 '의원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은 '황제특권'으로 지칭하며 즉각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은 "구조적 비리 근절을 위한 대혁명"으로 평가하며 철저한 준수를 다짐했다.

다만 농축산업, 식당 등을 경영하는 영세민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보완책을 추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무현 탄핵과 호남 차별 사과 = 보수 진영의 당 대표로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처음 호남에 사과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시절 국정에 더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못한 점,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던 것에 사과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인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을 지칭한 이른바 '홍삼 게이트'를 거론하며 김 전 대통령의 국정 2선 후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명박 대통령 시절 미국 소 먹으면 수천 명이 죽을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 미국 소 먹고 입원한 환자는 한 명도 없다"면서 "또 박근혜 정부 들어와 정부조직법 개정 발목잡기부터 국가 원수에 대한 막말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 운영에 대한 비판 바닥에는 결국은 대선 불복 심리가 깔려 있다고 보고 과거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며 '역지사지'의 정치를 당부한 것이다.

이 대표는 또 "새누리당 정부와 이전의 보수 정부가 호남을 차별하고, 호남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면서 "새누리당 당 대표로서 이 점에 대해 참회하고 사과한다"고 말했다.

"호남과 화해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대표 시절이던 2004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유신시절의 피해에 대해 사과하거나 이후 당 대표, 원내대표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한 적은 있어도 호남에 대한 차별을 직접적으로 사과한 적은 없었다.

여기에는 보수 정당의 첫 호남 출생 대표로서 뿌리 깊은 영호남 반목을 해소하자는 명분도 있지만, 내년 대선을 위한 '서진'(西進)의 전략적 포석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4·13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당이 낙동강 전선을 뚫고 새누리당의 아성인 영남 지역을 뚫고 들어온 만큼 호남 지역을 포기할 경우 대선은 필패라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8·9 전당대회 경선 중 "대선에서 호남표 20%를 가져오겠다"는 자신의 공약을 현실화하기 위한 첫 단추인 셈이다.

"호남과 새누리당이 얼마든지 연대정치, 연합정치를 펼칠 수 있다"고 한 점은 이를 위한 일종의 방법론으로 볼 수 있다.

◇사드 등 정책현안 원칙 고수 = 그러면서도 야당에 대한 견제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안보 분야에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의 반대론에는 "안보 문제를 정략적 편가르기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드 배치와 사이버테러방지법을 비롯한 안보 법률안, 안보 예산 통과에 초당적 협력을 촉구하기도 했다.

동시에 파견근로자법,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 노동 관련 4개 법안을 일일이 지목하고, '규제프리존특별법' 등 여권이 추진 중인 중점 법안을 설명하며 야당의 협조를 당부했다.

반면, 무상복지에 대해서는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일부 정치인이 현금은 곧 표라는 정치적 계산으로 청년들에게 현금을 나눠주고 있다"면서 "단지 표를 얻기 위해 미래세대의 돈을 훔쳐 무상복지를 실시하겠다는 경솔함에 회초리를 들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한 '청년 수당'을 공격함으로써 기선 제압에 나선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안용수 기자 aayy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