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김정은씨, 남아공에 3천만원 보냈다가 '테러자금' 의심받아
송금한 국내 은행 "외부 요인으로 발생한 문제…귀책사유 없어"


40대 여성이 외국으로 보낸 돈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미국의 한 은행에 동결되는 일이 발생했다.

올초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한층 강화된 전 세계적인 대북 제재 때문인데 돈을 송금해준 국내 은행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김 위원장과 '동명이인'인 해당 여성만 고스란히 송금 지연에 따른 피해를 보게 생겼다.

4일 신한은행 등에 따르면 김정은(45·여)씨는 지난달 10일 양천구의 이 은행 지점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언니에게 3천만원(미화 약 2만7천 달러)을 송금했다.

13년째 남아공에 거주하는 김씨 언니는 최근 영주권을 취득하고서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주택을 사들이기로 했고, 부족한 돈을 김씨로부터 지원받기로 했다.

그러나 돈을 보낸 지 20일이 지나도 남아공 은행에 입금되지 않았다.

김씨의 언니는 예정된 주택 구매 계약을 체결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김씨는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언니의 연락을 받고서 지난달 30일 은행에 이유를 물어보고서야 돈이 미국 뉴욕의 한 은행에 묶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통상적으로 3∼4일 걸리는 해외송금이 이토록 지연되고 송금 자체가 거부된 것은 송금자 이름이 '김정은'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앞서 신한은행은 김씨가 송금한 돈을 뉴욕의 한 중개 은행에 보냈고 이 은행은 남아공의 한 은행으로 돈을 보냈다.

남아공 은행은 김정은이라는 이름 때문에 '테러 자금'으로 의심된다며 돈을 미국의 은행으로 돌려보냈다.

돈을 돌려받은 미국의 은행은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북한 테러 자금 연관성을 검토한다는 이유로 신한은행에 돈을 돌려보내지 않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은행이 진행하는 테러 자금 연관성 조사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는 점이다.

김씨의 남편은 연합뉴스 통화에서 "미국의 은행이나 남아공의 은행이 아닌 신한은행을 믿고 송금을 했는데 돈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남아공에서는 계약을 체결 못 해 피해가 크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 "분명 송금을 할 때 인적사항을 모두 기재했는데 북한의 김정은으로 어떻게 오해할 수가 있느냐"며 "신한은행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며 돈이 4∼5개월 묶여 있을 수 있다고 변명을 하고, 오히려 수수료를 부담하라 한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우리는 신분 증빙서류까지 발송했지만, 미국의 은행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검토를 할지는 알 수가 없다"며 "최대한 빨리 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재촉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송금이 안 된 것은 은행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은행에 귀책사유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보상이나 수수료 부담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침이 정해지지 않아 지금 단계에서 언급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p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