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주빌리은행 연계로 '노비문서' 부실채권 사들여 소각
성남·강원·부산·광주 등 금융상담센터 운영·저신용자 대출 지원


대전에 사는 A(58)씨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던 1999년 17억원 규모의 사업체가 흑자부도나면서 수억원의 빚을 지게 됐다.

일용직 등으로 일하며 빚을 갚아 나갔지만 급한 자금 해결을 위해 썼던 대부업체의 고금리 대출과 신용카드 연체 빚은 A씨의 발목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지난해 7천여만원의 채무가 남은 상태에서 위암 판정까지 받은 A씨는 주빌리은행을 통해 16년간의 빚더미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주빌리은행은 지난해 일부 부실채권을 사들여 소각시켰고 A씨의 개인회생 절차를 지원하고 있다.

A씨는 "아무리 일해도 돈 버는 속도가 이자 느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절망했는데 다시 열심히 살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가계 부채가 1천200조원이 넘고 고금리 대출이 증가하는 추세 속에 일부 사회단체와 지방자치단체가 생계형 채무자 구제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 단체는 고금리 대출을 받았다가 장기간 불어난 빚을 갚지 못해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서민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 '죽지않는 망령' 부실채권 사들여 서민부채 탕감…주빌리은행
서민 채무자들은 담보나 신용 등의 문제로 은행보다 이자 부담이 큰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2016년 상한 금리 34.9%)에서 빚을 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장기간 빚을 갚지 못해 부실채권 처리가 되면 불법 추심 등에 쉽게 노출된다.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을 장기 연체하면 금융기관은 그 채권을 손실 처리하고 대부업체에 원금의 1∼10% 수준의 헐값에 판다.

부실채권을 사들인 대부업체는 채무자에게 원금과 연체이자까지 독촉해 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채무자들은 비인간적인 협박을 받거나 압박에 못 이겨 다른 고금리 빚으로 돌려막기를 하기도 한다.

이처럼 암암리에 거래되는 장기 연체자들의 부실채권을 사들여 서민부채를 탕감해주는 주빌리은행(☎ 1661- 9736)이 지난해 8월 설립됐다.

주빌리은행은 개인과 기업의 성금으로 금융기관에서 부실채권을 싸게 사들여 채무자가 원금의 7%만 갚으면 빚을 탕감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채무자 8천96명이 주빌리은행을 통해 1천731억원의 빚을 탕감받았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공동 은행장을 맡고 있는 주빌리은행 설립은 경기 성남시의 '빚 탕감 프로젝트'가 기반이 됐다.

성남시는 2014년 9월 12일부터 '빚 탕감 프로젝트'를 시행해 지난해 10월 12일까지 시민 성금 1억3천389만원을 모아 악성채권 106억원을 소각해 채무자 1천72명을 구제했다.

추심업체, 종교계, 기업체, 시 산하기관 등 각계각층 시민 성금과 채권 기부가 힘이 됐다.

성남시는 금융복지상담센터를 운영하며 서민 채무자들에게 파산 신청, 개인회생 등 절차를 상담·지원하고 있다.

◇ 지자체 금융상담센터 운영, 저소득·저신용 계층 무이자 융자·보증 지원도
경남 창원시는 2010년부터 '저소득 주민 생활안전기금 융자 조례'를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융자대상은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 중 구멍가게 등 영세상행위를 위한 자금, 천재지변이나 재난으로 인한 생계자금, 무주택자 전세금, 대학 학자금 등이다.

창원시는 시 출연금과 융자금 회수액, 기금운용 수익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세대당 2천만원 이하, 학자금은 연간 300만원 이하까지 무이자로 빌려주고 있다.

강원도도 2012년 6월부터 서민금융종합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서민대출 안내 등 금융상담과 불법 사금융 피해 구제, 개인회생 지원 등이 목적이며 금융감독원, 한국자산관리공사, 신용회복위원회가 참여하고 있다.

센터 개설 이후 지난 5월까지 3년간 피해 상담 60건, 금융상담 2천650건 등 2천710여건을 상담했다.

저소득·저신용 주민들이 신용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도 취약계층 서민금융지원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강원도는 30억원을 출연한 강원신용보증기금에서 5배수인 150억원 대출 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2011년 9월부터 지난 7월 31일까지 796건·118억1천500만원을 수행했다.

부산신용보증재단은 국내 소비 수요 감소, 해운·조선업의 구조조정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특별채무감면제도를 이달부터 12월 31일까지 시행한다.

일시상환 때 연체이자율을 1%로 적용하고 분할상환 때에는 초기 입금 50% 이상은 2%, 40% 이상은 3%, 30% 이상은 4%의 연체이자율을 적용해 소상공인의 부담감을 덜 계획이다.

광주 광산구도 빛고을국민체육센터 내에 금융복지상담센터를 설치하고 지난 1일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금융복지상담사와 대한법률구조공단 광주지부, 광주지방변호사회와 연대해 신용회복 지원, 금융복지 상담, 금융 교육을 한다.

민간주도 복지기관인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은 지난해 말 주빌리은행, 광산구와 협약을 맺고 11억원 상당의 부실채권을 소각할 수 있는 금액을 후원, 59명의 채무자를 구제하기도 했다.

민형배 광산구청장은 "3곳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가 연간 350만명이 넘는다"며 "많은 사람이 생계유지를 위해 빚을 낼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 속에 빚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임을 인식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태, 김상현, 이정훈, 임보연 장아름 기자)

(전국종합=연합뉴스) areu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