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옥-최은희 부부 납치 사건 다룬 다큐멘터리 공개

"왜 우리 영화는 맨날 나오는 것만 반복하는 게 많고, 도식적으로 (만드는지)"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 씨 납치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연인과 독재자'를 통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육성이 공개됐다.

2일 시사회에서 상영된 이 영화에서 김정일은 "도대체 왜 장면 장면마다 자꾸 초상난 집처럼 우는 것만 찍게 만드나, 우리 영화 안 우는 영화는 안 되겠나.

상갓집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만드나?"라며 북한 영화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김정일은 이어 "우리도 (예술대회에) 나갈 만한 것들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쪽(남한)은 대학생 수준인데, 우린 이제 유치원인데…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새로운 걸 바라지도 않고, 완고하다고… "라며 남북 영화 현실을 비교하기도 했다.

김정일은 그러면서 "(신 감독이) 자기 발로 자기 뜻대로 뜻을 가지고 (북한으로 ) 오는 방법이 없나? 신 감독을 유인하려면 뭐가 필요한가…"라고 당시 상황을 언급했다.

이 대화는 북한으로 납치된 신 감독이 김정일을 만났을 때 몰래 녹취한 것으로, 김정일이 북한의 영화발전을 위해 신 감독의 납치를 지시했음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신 감독과 최은희씨는 1960년대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부부였다.

그러나 신 감독과 이혼한 최 씨는 1978년 1월 홍콩으로 여행 갔다가 사흘 뒤 홍콩 섬 해변에서 북한으로 납치된다.

이어 1월 22일 최은희는 김정일의 마중 속에 북한 남포항으로 들어간다.

그해 7월 19일 최 씨의 행방을 찾아 홍콩으로 온 신 감독도 납치되고, 두 사람은 5년 뒤인 1983년 3월 김정일이 주최한 생일파티에서 재회한다.

영화 속에서 신 감독과 최 씨는 북한에서 영화 촬영을 위해 물질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신 감독은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사랑 사랑 내 사랑'(1984년)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김정일은 북한 영화를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어 했다.

김정일은 신 감독에게 "이제는 정치무대 범위를 넓혀서 계속 활약해달라"며 "오스트리아나 스웨덴 그다음에는 제네바, 말하자면 중립국을 표방한 나라를 다니면서…그렇게 유럽에 다니면서 이름을 날려야지"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신 감독과 최 씨는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뒤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에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한다.

이 작품은 영국 출신의 로버트 캐넌과 로스 아담이 연출을 맡았다.

두 감독은 이방인의 객관적 시각에서 정치적 의도나 사적인 감정을 담지 않고 사실에만 초점을 맞췄다.

이야기의 얼개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는 최 씨의 인터뷰로 진행되며 최 씨의 아들과 딸, 홍콩의 형사, 과거 비공식 CIA 소속 인원 등의 인터뷰도 삽입됐다.

제작진은 이 작품 촬영을 위해 2년여에 걸쳐 최 씨 가족을 설득했다고 한다.

로버트 캐넌 감독은 "우리는 이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왜 진작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다"면서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상황,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북한의 지도자, 그리고 진부하지 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에 대해선 "영화의 영향력을 알고 있었고 이를 자신의 독재 도구로써 이용하고자 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9월 22일 개봉.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