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로 피해가는 법안 비용 계산
야권에서 쏟아내는 ‘부자 증세’ 법안 가운데 나라살림에 미칠 영향을 정밀하게 계산한 법안을 찾아보긴 쉽지 않다. 윤호중·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 등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올리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대기업 연구개발(R&D) 세액공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윤호중 의원 발의, 법인세 연평균 1조6248억원 증가)이 제대로 된 비용추계서를 첨부한 유일한 증세 법안이다.

20대 국회에서 의원이 발의한 법안 중 91%는 비용추계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심성 복지 법안이 쏟아지는 것과 무관치 않다. 지난해부터 의원 발의 법안에 국회예산정책처가 작성한 비용추계서를 첨부하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지만 예외조항이 많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현행 국회법은 법 시행으로 예상되는 비용에 대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용추계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국회예산정책처에 대한 ‘비용추계요구서’만 내도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 신속히 법안을 제출해야 하는 긴급상황 등을 위한 예외조항이 손쉽게 입법하는 우회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득공제와 관련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대표적 사례다. 연극·영화 관람료(김해영 더민주 의원)와 로컬푸드 직매장 구입액(윤영일 국민의당 의원) 등에 대한 소득공제 조항이 담긴 이들 법안엔 비용추계요구서만 첨부돼 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비용추계를 의원실에서 자체적으로 작성하곤 했던 과거에 비해서는 제도가 개선된 것”이라면서도 “법안이 재정에 미치는 효과를 꼼꼼히 따져 발의하는 문화가 정착되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법안 발의가 늘어난 것도 부실 입법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예산 추계를 제대로 하려면 길게는 5개월 걸리는 것도 있다”며 “현재 인력으로는 한 달에 수백개씩 쏟아지는 법안에 대한 예산을 일일이 따져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