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치정국에선 석달 넘기기도…폐기된 사례는 없어
2002년 대선 앞두고 태풍 '루사' 수해복구땐 사흘만에 통과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가 이어지면서 지난달 26일 제출된 추경안이 한 달 넘게 국회에 계류될 가능성이 커졌다.

추경은 정부의 본예산보다 돈을 더 쓰기 위해 편성되는 예산이다.

국가재정법상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나 대량실업, 남북관계 변화 등이 편성 요건이다.

실제로 6·25 전쟁 도중 국회는 1950년 1차례, 1951년 4차례, 1952년 1차례, 1953년 1차례의 추경을 통과시켰다.

이후 각 정권에서 추경은 수시로 이뤄졌다.

민주화 이후 추경이 없었던 해는 1993년, 2007년, 2010∼2012년, 2014년뿐이다.

추경은 편성 요건에서 알 수 있듯 '시급성'을 이유로 편성되기 때문에 비교적 신속하게 처리되는 게 관례로 통했다.

2002년 추경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태풍 '루사'의 수해복구를 위해 4조1천억원의 추경안이 9월10일 제출됐으며, 국회는 사흘 만인 13일 통과시켰다.

그러나 여야의 정쟁에 휘말려 추경안 처리가 장기 표류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2000년 6월29일 국회에 제출된 추경안은 석달을 훌쩍 넘긴 10월13일에야 처리됐다.

당시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원내 교섭단체 구성 문제와 관련한 국회법 개정으로 국회가 파행을 거듭한 탓이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은 자민련이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발판 삼아 교섭단체에 진입하려는 시도를 저지하려고 장외 투쟁을 벌였다.

추경이 장기 표류하자 선(先) 집행 논란도 일었다.

2008년 6월20일 제출된 추경안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논란'의 후폭풍으로 8월19일 원(院) 구성이 이뤄지면서 국회가 지각 출범했다.

이때의 야당은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이다.

그해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내 경제를 강타했지만, 정치권은 석 달 가까이 지난 9월18일 추경을 통과시켰다.

금융위기의 수습을 위해 이듬해인 2009년 28조9천억원으로 대규모 편성된 이른바 '슈퍼 추경'은 3월30일 제출돼 정확히 한 달 만인 4월29일 통과됐다.

2013년 추경은 4월18일 제출돼 19일 만인 5월7일, 지난해 추경은 7월6일 제출돼 18일 만인 7월24일 각각 처리됐다.

지난달 26일 제출된 올해 추경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남은 절차를 고려하면 일러야 오는 26일 처리를 기대할 수 있다.

한 달을 넘기는 셈이다.

일각에선 추석 연휴 전 자금 집행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정부·여당이 추경을 포기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추경 폐기는 헌정 사상 유례가 없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2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며칠 늦어지더라도 이번 주 중으로 추경 처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두 야당에 촉구했다.

더민주 변재일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추경의 배경이 구조조정"이라며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의 증인채택 합의가 먼저라고 맞섰다.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