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 직접적 사과 없어…징벌적 손해배상 주장엔 "논의에 적극 참여"
'대통령 사과' 문제 놓고 여야 공방으로 잠시 파행도

국회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18일 사흘째 정부기관 보고 청취를 이어갔다.

기획재정부, 법무부, 고용노동부가 출석한 이날 회의에서 위원들은 보건당국이 가습기살균제의 원료가 되는 위험물질을 제대로 국민에게 공표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고 비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기금 마련 주장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가습기살균제 사태 원인 중 하나는 정부가 기업을 과잉보호한 것도 있다"며 "SK케미칼이 1997년 (가습기살균제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에 대한 유해성 조사보고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는데 노동부는 그 물질의 명칭과 유해성을 법에 따라 제대로 공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시할 때도 물질명을 PHMG가 아닌 'BUS-07', 'YSBMT' 등으로 바꿔 썼다.

암호도 아니고 뭐냐"며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하잔 취지로 이렇게 했다면 동전의 한쪽 면만 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고영선 고용부 차관은 "기업보호 측면이라기보단 행정상의 하자가 있었던 것 같다"며 "앞으로는 혼선 없게 조치하겠다.

행정 절차상 규정대로 집행 안 된 부분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은 "1차 책임은 제조·판매사에 있지만 관리 감독을 제대로 못 하고 피해자들이 수년간 홀로 기업과 싸우게 놔둔 정부도 문제"라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촉구하며, 피해자 지원을 위한 기금도 마련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경우 정부가 국내 기업 활동 위축을 우려해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먼저 도입한 선진국 사례에서 보듯이 기업경영을 투명하게 해 오히려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창재 법무부 차관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현재 법 체계와 조금 상치되는 면이 있어 우려하는 분들이 있지만 개별 법률에서 이미 도입한 사례도 있으므로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질의 시작 전에는 전날 기관보고에서 신 의원이 가습기살균제 사태와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 것을 두고 여야 의원 간 공방이 일어 잠시 파행을 빚기도 했다.

3개 부처 차관들은 이날도 업무보고에서 '유감', '위로' 등의 표현을 썼지만 직접적 사과의 표현은 하지 않았다.

이에 우원식 특위 위원장은 "진솔한 사과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것을 마지막까지 하지 않는 정부 태도에 유감스럽다"며 "9월 2일 다시 한 번 기회가 있을 테니 좀 더 진전된 사과내용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특위가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지만 어제 신 의원님의 아슬아슬한 정치적 발언이 있었다"며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우 위원장은 "정부를 대표해 장관이 사과하라고 한 것이지 개인에게 사과를 요구한 게 아니다"라며 "문제가 심각해지면 대통령이 사과할수도 있는데 그것 역시 과거부터 잘못한 정부의 총책임자로서의 대통령을 칭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소란이 계속되자 우 위원장은 10분간 정회를 선언, 이후 다시 속개해 질의를 이어갔다.

특위는 이날 3일간의 기관보고를 마무리하고, 오는 22∼26일 최대 가해기업으로 지목된 옥시레킷벤키저(옥시·현 RB코리아)의 영국본사 등을 방문하는 현지조사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이달 말에는 관련 기업 등의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불러 청문회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lis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