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배모임 의원 67명·각료·차관급 인사 직접 참배…미리 참배도
아베 4년째 가해책임 언급 안해…아키히토 일왕 '깊은 반성'과 대비
한국 여야의원 독도 방문에 일본 정부 반발…한국 "수용할 수 없다" 일축


일본의 패전일(8월 15일)을 맞이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각료를 비롯한 정치권 주요 인사가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대거 참배했다.

아베 총리 본인이 2013년 12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키운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 논란은 올해도 변함없이 이어지게 됐다.

◇ 아베 참배 대신 공물대금, 각료 2명 참배…2명은 미리 참배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대리인인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자민당 총재특별보좌를 야스쿠니신사에 보내 공물의 일종인 다마구시(玉串·물푸레나무 가지에 흰 종이를 단 것)료를 봉납했다.

이는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참배할 경우 일본 내부는 물론 한국, 중국, 미국 등에서 비판이 쏟아질 것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특히 다음 달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추진 중인 것 등을 감안해 일본 내 보수·우파 세력의 이해를 얻도록 일종의 '대리 참배' 형식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말 재집권 이후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참배한 것은 2013년 12월 26일이 유일하다.

그는 4차례의 패전일이나 연간 두 차례 열리는 예대제(例大祭·제사)에는 참배 대신 공물이나 공물대금을 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니시무라 특보는 "(총리로부터) 공물료를 내고 참배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전사한 분들의 영령에 애도를 표하고 명복을 빌었다"고 15일 기자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내각 구성원인 각료들이 줄줄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무상과 마루카와 다마요(丸川珠代) 올림픽 담당상은 15일 오후 각각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해 참배했다.

다카이치 총무상은 각료 신분임에도 그간 패전일이나 예대제(例大祭·제사)에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반복해 왔다.

작년 10월 초 개각에 환경상으로 기용됐다가 최근 자리를 옮긴 마루카와 올림픽 담당상이 각료 신분으로 참배한 사실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패전일에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논란을 일으킬 것을 예상한 일부 각료는 날짜를 앞당겨 참배했다.

이마무라 마사히로(今村雅弘) 부흥상은 자신이 각료로 임명된 것을 보고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이달 11일 일찌감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야마모토 유지(山本有二) 농림수산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이달 6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고 밝혔다.

각료는 아니지만 아베 총리의 최측근으로 분류된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관방 부(副)장관도 참배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반복해 온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방위상은 자위대가 파견된 아프리카 지부티 방문차 지난 13일 출국해 일단 패전일 당일 참배는 하지 않았다.

◇ 차관급 인사 포함 국회의원 67명 집단참배…아베 친동생·고이즈미 차남도
매년 패전일이나 예대제에 참배를 반복한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여야의원은 변함없이 야스쿠니신사를 단체로 참배했다.

이 모임의 사무국을 담당하는 자민당 미즈오치 도시에이(水落敏榮) 참의원 의원실에 따르면 이날 국회의원 67명이 직접 참배했으며 102명이 대리인을 보내 참배하게 했다.

작년 패전일에도 이 모임 소속 의원 67명이 직접 참배했다.

집단 참배한 국회의원 가운데는 이시하라 히로타카(石原宏高) 내각부 부(副)대신, 아베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岸信夫) 외무 부대신, 미즈오치 도시에이 문부과학 부대신, 도요타 도시로(豊田俊郞) 내각부 정무관, 호리우치 노리코(堀內詔子) 후생노동성 정무관 등 차관급 인사가 포함됐다.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 민진당 하타 유이치로(羽田雄一郞) 전 국토교통상 등 유력 정치인도 참배했다.

문부과학상을 지낸 자민당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간사장 대행,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차남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자민당 농림부 회장은 이들 모임과 별도로 참배했다.

아베 총리의 공물료 봉납이나 각료를 포함한 정치권 주요 인사의 참배는 일본 내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교도통신은 고이케 아키라(小池晃) 일본 공산당 서기국장이 "일본의 과거 침략 전쟁이나 식민지 지배를 긍정하고 미화하는 입장을 총리 자신이 지지하고 있다고 안팎에 보여주는 일이 되지 않겠느냐"며 아베 총리가 공물대금을 보낸 것의 문제를 지적했다고 전했다.

야스쿠니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에서 숨진 약 246만6천여 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이곳에는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의 판결에 따라 교수형 당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를 비롯해 이곳에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도 합사돼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 인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행위는 전범을 미화하거나 침략 전쟁을 정당화한다고 비판받는다.

◇ 아베 가해사실 외면한 추도사…아키히토 일왕은 2년 연속 '깊은 반성'
아베 총리는 15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일본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발언할 때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일본이 타국에 피해를 준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역사를 겸허하게 마주해 세계 평화와 번영에 공헌하겠다", "내일을 살 세대를 위해 희망에 찬 국가의 미래를 개척해 가겠다"며 일본의 역할이나 미래를 강조했으나 일본의 가해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는 '부전(不戰)의 맹세'라는 표현도 사용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이로써 재집권 후 열린 4차례의 패전일 추도식에서 일본의 가해 책임을 외면했다는 지적을 받게 됐다.

앞선 총리들은 추도식에서 "일본이 아시아 국가에 큰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며 일본의 가해 책임을 담은 언급을 했었다.

최근 생전퇴위 의향을 표명해 주목받은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작년에 이어 2년째 깊은 반성을 언명해 아베 총리와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그는 "전쟁터에 흩어져 전화(戰禍)에 쓰러진 사람들에 대해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세계 평화와 우리나라가 한층 더 발전하길 기원한다"며 일본뿐 아니라 타국까지 의식한 메시지를 던졌다.

◇ 한국 여야의원 독도 방문에 반발
일본 정부는 한국 여야의원이 15일 독도를 방문한 것에 대해 전방위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이날 이희섭 주일본 한국대사관 공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여야의원의 독도 방문에 대해 항의했다.

가나스기 국장은 독도가 '일본 고유영토라는 점에 비춰볼 때 한국 국회의원의 방문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으며 사전에 이를 취소하도록 촉구했음에도 강행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도 한국 외교부 당국자에게 비슷한 취지로 항의했다.

한국 정부는 독도는 한국 영토이므로 일본의 항의를 수용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김정선 이세원 특파원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