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도 흥정거리 전락…'식물국회' 전철 밟는 20대 국회
개원 74일째를 맞은 여야 정치권이 19대의 ‘불임(不姙) 국회’ 전철을 밟고 있다. 예상 밖 신속한 원 구성 합의로 기세 좋게 출발한 여야는 시급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볼모로 잡고 3당 3색(色)의 전제조건을 내세우면서 교착상태에 빠졌다. 또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한 여야 간 공방이 격화되면서 노동 4법과 경제활성화법 협상은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공감한 추경안 처리는 기약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각 상임위원회의 추경안 심사도 지도부 협상만 쳐다보면서 ‘시늉’만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잠정 합의한 12일 처리는 이미 물 건너갔고, 협상 실무진인 수석부대표들이 구두 합의한 22일도 각당의 현안을 추경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어 9월 정기국회 이전 처리 역시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19명은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추경안이 본래 목적과 방향을 찾을 수 없는 부실 추경”이라며 재편성을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 추경안을 심사한 결과 11조원 중 4조9000억원은 내년에 당연히 포함될 예산이고, 나머지 6조1000억원은 대기업과 부실 정책 지원으로만 채워져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원내지도부를 향해 “추경 처리 협상에 속도만 내지 말고 누리과정 예산 반영 등을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고 협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 원내대표는 지난 3일 △검찰개혁 특별위원회 구성 △사드대책 특위 구성 △5·18 특별법 처리 공조 △세월호특별조사위 기한 연장 △조선·해운 구조조정 청문회 △누리과정 예산 대책 요구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 청문회 △어버이연합 의혹 청문회 등 8개 사항을 추경 협상 테이블에 함께 올리는 데 합의, 추경 협상에 공조하기로 했다. 새누리당이 ‘거야(巨野) 횡포’라며 반발해 추가 협상은 중단됐다. 새누리당도 노동 4법이 추경안과 함께 처리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19대 국회 때 폐기된 뒤 새누리당이 재발의한 규제프리존특별법, 규제개혁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경제활성화법은 이미 여야 정치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분위기다.

새누리당에 이어 이달 말 더민주가 전당대회를 통해 지도부를 교체하면 내년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이슈선점 경쟁이 본격 불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민주는 법인세 및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 등 ‘부자증세’를 골자로 한 세법개정안을 선제적으로 내놨다. 새누리당은 더민주의 법인세 인상 등 부자증세안에 반대하고 있으며, 국민의당도 내달 초 세법개정안을 내놓기로 하면서 여야 정치권의 치열한 세법 전쟁이 예고되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3당 출현에 따른 여야 협치를 기대했으나 개원 후 새누리당은 계파 분쟁에 휩싸이고, 두 야당은 선명성 경쟁에 나서면서 생산성이 19대 국회만 못하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신임 지도부 교체 뒤 대선정국으로 넘어가면 경제활성화법 등 민생 현안 처리는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