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마찰음 지속 가능성…북중 밀착에 북핵공조 우려
ARF 성명 채택 지연…어른거리는 '한미일 대 북중러'


지난 24일부터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아세안(ASEAN) 관련 연쇄 외교장관 회의를 무대로 펼쳐졌던 아세안와 남북미중 등 주요 관련국 간의 치열한 외교전이 26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연쇄회의는 어느 때보다 아세안, 동북아 관련국간 갈라진 틈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이 나온다.

미중간 패권싸움이라는 큰 구도 속에서 남중국해 문제와 북핵, 북핵대응에서 파생된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문제 등 복잡한 현안이 얽히고설키면서 한바탕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졌다.

주한미군 사드 배치 결정에 중국이 격렬히 반발하면서 우리 정부가 최상의 관계라고 자평해왔던 한중관계가 시험대에 올랐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최근 한국 측의 행위는 쌍방(양국)의 호상(상호) 신뢰의 기초에 해를 끼쳤다"면서 한중관계를 수호하기 위해서 한국 측이 "어떤 실질적 행동을 취할지에 대해 들어보려고 한다"고 언급한 것이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중관계의 현주소다.

한중관계에 찬바람이 불면서 우리 정부로서는 북핵 공조에도 근심거리가 생겼다.

왕(王毅) 부장이 비록 북핵 불용과 유엔 안보리 결의 충실한 이행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지만 사드 갈등이 계속되는 한 중국의 대북공조 결속력 약화 우려는 지속될 전망이다.

중국이 사드와 관련한 문안 반영을 시도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ARF 의장성명은 이날 회의가 종료됐음에도 채택되지 못한 상황이다.

사드는 물론, 북핵,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표현 수위를 놓고 관련국 간 치열한 줄다리기 탓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은 사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이번 아세안 관련 연쇄회의 무대에서 북한과 노골적으로 밀착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사드에 대한 한미를 향한 견제의 메시지인 동시에 미국과의 남중국해 갈등까지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은 이 틈을 한껏 이용하고 있다.

왕이 부장과 나란히 같은 비행기를 타고 라오스에 도착한 리용호 외무상은 2년 만에 북중 외교장관회담을 개최하고,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책임 있는 핵보유국'을 주장하는 한편 5차 핵실험 가능성까지 위협했다.

리 외무상은 "어떤 제재에도 대처할 준비가 돼 있다"고 허세를 부렸다.

북중이 밀착을 과시하고 미중 간에도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찬바람이 쌩쌩한 가운데 우리 정부는 한일,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북핵에 대한 공조를 재확인했다.

최근 중국과의 분쟁에서 국제 중재재판이 필리핀의 손을 들어준 남중국해 문제를 두고도 우리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모양새다.

우리 정부는 이번 아세안 관련 연쇄회의에서 "창의적 외교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했다.

국제 중재재판 결과에 대해 미국이 수용을 요구하고, 중국이 거부하면서 미중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언제든 우리 정부가 미중으로부터 보다 적극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윤 장관은 라오스에서 기자들에게 "과거 냉전 시대처럼 북중러, 한미일 구도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전망"이라고 했지만 러시아가 사드 문제에 대해 중국과 공조하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형국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리 정부가 해오던 대로 당당한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사드 배치 결정을 비판하며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2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 대해 "왕이 부장이 현란한 제스쳐는 했지만 한국과의 외교장관 회담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면서 "중국도 한중관계를 완전히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시그널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윤 원장은 "우리로서는 중국에 대해 사드가 중국을 겨냥하지 않고 방어적 자위 조치이며, 북한이 비핵화하면 사드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계속 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우리 정부가 외교를 이렇게 힘든 상황으로 자초한 것"라면서도 "최악을 피하려면 차악을 선택해야 하며, 북핵 위기가 감소하거나 해결 기미가 보이면 사드 배치를 철회한다든지 서두르지 않겠다는 유연한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엔티안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kimhyo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