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진실 금지법
조선시대 4대 사화(士禍)로 희생된 선비가 500명에 달했다. ‘정여립 모반 사건’의 기축옥사에선 1000명 이상이 당했다. 호남 지식계가 쑥대밭이 됐다는 정도다. 정여립 사건은 조작 가능성 때문에 아직도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무참하게 처형됐다. 반주자학적 이설들은 온갖 명분으로 공격을 당하고 왕따 당하면서 조선 사회는 서서히 죽어갔다.

학문과 사상의 자유는 없었다. 주자학적 교리를 조금이라도 달리 해석하면 바로 ‘사문난적(斯文亂賊)’이 됐다. 송시열은 “주자가 모든 학문의 이치를 이미 밝혀놓았는데 감히 자기 의견을 내세워 억지를 부리니 진실로 사문난적”이라며 윤휴를 몰아붙였다. 윤휴는 유배지에서 죽고 말았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 민주화의 시대조차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지구촌 이슈라는 기후변화 논란도 그중 하나다. 그것도 미국에서의 일이라면 놀랄 만하다. 근본주의 환경론자들은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의 입을 특별법까지 만들어 봉쇄하려고 든다. ‘기후변화 회의론’은 기후변화 위험이 과장됐거나 오류일 수도 있다는 일체의 주장을 말한다. 미국 민주당 일각에서 회의론자의 입을 막는 법안을 발의해 논란이 됐다. “나와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그 진영의 표현의 자유를 막아선 안 된다”는 반론이 드세지면서 일단은 없던 일이 되기는 했다.

최근 야권에서 제기한 ‘5·18 특별법’도 그런 반자유의 대열에 동참할 모양이다. 국민의당에 이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까지 나서서 징역 5~7년짜리 처벌법을 추진하고 있다. “5·18의 가치에 더는 의문을 제기하지 말라”는 것이 법안의 주된 내용이다. 일각에서 북한 간첩 개입설까지 제기하자 이른바 민주화 진영에서 분노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5·18에 대한 다양한 주장과 해석을 원천봉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과잉 입법에다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모두를 정면에서 침해한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학자의 책에 ‘삭제 명령’의 칼날이 날아든 것도 그렇다. 정부의 공식적 정의와 다른 주장을 무조건 금지하는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지만, 검찰은 결국 박유하 교수를 기소했고 법원도 삭제를 지시했다. 존 밀턴은《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에서 “사상의 공개시장에서 진리와 거짓이 경쟁하도록 하라”는 유명한 논리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다. ‘공원의 문을 닫으면서 까마귀들을 모두 가뒀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