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세종시·제주도 등 출자·출연기관 추가 설립
보은 인사용, 업무 중복…전문가 "설립 막는 강력조치 필요"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공사와 재단 등을 신설하며 조직을 키우고 있다.

해당 자치단체는 행정의 효율성과 시민 편의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며 출자·출연기관 추가 설립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출자·출연기관 잇단 설립이 보은인사용이라는 지적과 함께 다른 기관과의 업무중복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산하기관 설립을 막기 위해 강력한 조치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공공성이 강조되는 일부 기관을 제외한 기관을 민영화하거나 통폐합해 주민 부담을 줄이면서 경영성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 몸집 불리기 나선 지자체
행정자치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 전국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의 출자·출연기관은 618곳에 이른다.

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은 2003년 227개에서 2013년 558개로 증가했고, 이후 2년여 만에 다시 60개가 더 생기는 등 꾸준히 늘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에너지공사, 공공보건의료재단, 관광진흥재단, 120재단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10월 말 출범 예정인 에너지공사는 목동과 노원 집단에너지 사업을 운영하던 SH공사 집단에너지사업단을 분리해 별도 공사로 만드는 것이다.

'원전하나 줄이기'를 위한 태양광 등 친환경에너지 사업과 온실가스 배출 감소, 취약계층 에너지 복지 등까지 에너지공사에서 맡을 예정이다.

공공보건의료재단은 13개 서울시립병원 관리 운영을 효율화하고 공공의료 관련 정책연구 등을 하는 기구다.

120재단은 민간 위탁한 다산콜센터 업무를 담당하고, 서울관광진흥재단은 2008년 서울시가 민간기업과 공동 출자해 설립한 서울관광마케팅에서 전환하는 것이다.

출범 5년차를 맞은 세종시도 산하기관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종시는 올해 말까지 세종호수공원 등 각종 공공시설을 관리할 시설관리공단 설립을 마치고, 내년부터 운영에 들어갈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조성한 공공시설과 도로시설, 체육시설 등 시로 이관된 공공 시설물이 급증하고 있어 시설관리공단 설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화 인프라 확충·관리를 전담할 문화재단과 내년부터 시내버스 완전 공영제를 하기로 하면서 이를 관리할 교통공사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는 해운항만물류공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국제 크루즈선박 기항 횟수와 관광객이 증가하고, 제주신항 및 서귀포항 개발에 따라 해운항만 관리를 위한 전담조직이 필요하다는 게 제주도의 설명이다.

제주도는 주요 항만시설을 관리하고 운영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항만 경쟁력 향상을 꾀하는 한편 영업 이익의 지역 내 재투자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충남도는 지난 5월 인재육성재단 위탁기관이던 평생교육진흥원을 독립기관으로 출범시켰고, 전북도도 지난 4월 문화예술 진흥과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문화관광재단을 설립했다.

강원도는 동해안 6개 시·군과 함께 크루즈 유치를 위한 마케팅과 제반 사항 준비 등을 위해 강원도해양관광센터를, 인천시는 지난해 9월 인천관광공사를 부활시켰다.

◇ 보은인사·업무중복·도덕적 해이 우려
출자·출연기관은 지역사회 경제진흥, 문화사업, 의료사업 등을 수행하기 위해 지자체가 조례로 설립하는 주식회사 또는 재단법인이다.

지자체가 자본금 50% 이상을 투자해 운영하는 공기업과 달리 자본금이 50% 미만이면 출자기관으로, 해마다 출연금을 내 지원하는 방식이면 출연기관으로 분류된다.

1999년 출자·출연기관 설립 승인권이 지자체로 이양되면서 앞다퉈 출자·출연기관을 설립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기관은 설립 타당성 검토를 제대로 거치치 않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등 지자체의 재정 부담으로 작용하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감사원이 2014년 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 50곳의 운영실태를 감사한 결과 38곳이 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치단체장의 공약 남발로 유사기관이 있음에도 새롭게 설립하는 등 지자체의 조직 확대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특히 출자·출연기관 중 72%는 상시근로자 30명 미만으로 운영돼 소규모 기관 난립에 따른 비효율 우려도 제기된다.

결국, 출자·출연기관의 난립이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키우고 주민 손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지난 4월 지자체 출자·출연기관 설립을 까다롭게 하는 '지방 출자·출연기관 설립기준'을 발표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광역자치단체는 출자·출연기관 설립 계획단계에서 행정자치부와 협의해야 한다.

기초자치단체는 광역자치단체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설립 타당성 검토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곳에서만 할 수 있다.

자치단체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는 곳에서는 타당성 검토를 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일부 지자체가 공공성과 경영성의 조화라는 출자·출연기관 도입 취지를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공공성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출자·출연기관을 늘려 선거에서 자신을 도왔던 참모들에 대한 논공행상 관행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기관 간 업무중복 현상 발생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지자체의 무분별한 출자·출연기관 설립을 방지하기 위해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공공성이 강조되는 일부 기관을 제외하고 민영화 혹은 통폐합해 주민 부담을 줄이면서 경영성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선 6기를 맞아 일부 지자체에서 도입한 산하 기관장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단체장이 내정한 인물이 지방의회가 주관하는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면서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육 교수는 "인사청문회는 지방 공기업 사장이나 출자·출연기관장 임용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을 듣겠다는 아주 좋은 제도지만, 형식적으로 운영하다보니 잡음이 적지 않다"며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가 이 제도를 활용하려는 자세와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호천 홍인철 임보연 강종구 김상현 한종구 기자)


(전국종합=연합뉴스) jkh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