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인 과실 구체적 거론은 이한구 당시 공관위원장이 사실상 유일
이한구 "합의로 했는데 웬 독단"…경선 탈락자들 '상향식 공천' 비난
인명진 "정권재창출 위해 대통령 탈당해야" 해법 주문도


새누리당이 17일 공개한 '국민백서'에는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계파 갈등에 따른 공천 파동, 상향식 여론조사 공천, 수직적 당·청 관계, 대국민 소통 부재와 오만, 정책 부재 등이 꼽혔다.

그러나 백서는 그 내용을 둘러싸고 이어져 온 양대 계파 간 신경전을 반영하듯 책임 소재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대목 없이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는 한계도 드러냈다.

또 그동안 언론을 통해 보도돼온 문제점과도 차별성을 보이지 못했다.

특정 개인이나 계파에 대한 지적은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이 사실상 유일하게 구체적으로 거론됐다.

백서는 일반국민·전문가·당 사무처·경선 참여자 등 당내·외부인의 의견을 수렴해 분석한 형태로 구성됐으며, 주제별 구성 대신 조사 대상별로 나열하는 형식을 띠었다.

◇일반 국민 "계파갈등이 제일 문제" = 국민이 꼽은 총선참패의 최대 원인은 '계파 갈등'으로 나타났다고 백서는 밝혔다.

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 여론과 수도권·PK(부산·경남) 지역 집단심층면접(FGI) 등을 통해 수집한 국민 여론을 분석, 총선 참패의 원인을 계파 갈등을 포함해 불통·자만·무능·공감 부재·진정성 부재·선거구도 등 총 7개 키워드로 정리했다.

계파갈등 부분에서는 유승민 의원이 공천을 못 받고 당을 떠나는 과정에서 국민은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공천 막판에 김무성 전 대표의 '옥새 파동'까지 벌어져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고 설명했으며, 당 지도부의 '무책임한 발언'들이 당에 대한 비호감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분석도 포함했다.

그러나 일반 여론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진박 감별사' 논란 등에 대한 국민의 비판은 백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 출입기자들의 설문 결과도 실렸다.

144명이 응답한 설문에서 절반이 '공천파동'을 참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새누리당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이슈별로는 26.1%가 경제 문제를, 19.8%가 세월호 사고를 꼽았다.

◇ 전문가 "이한구 독단에 민심 이반" = 전문가 분석 중에는 총선 공천을 진두지휘한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에 대한 직접 비판이 눈에 띄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이한구 위원장의 독단이 민심 이반의 원인으로 크게 작용했다"면서 "야당의 분열에 지나친 기대감을 가지면서 자만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인명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도 "공천 과정에서 이한구 위원장이 보여준 오만함이라니…공천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정되는 걸 보며 국민은 '정말 개판이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대해 이한구 전 위원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내가 독단을 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는데, 합의제로 공천하는데 어떻게 독단이 작용할 수 있느냐"면서 "공천은 잘 됐지만 총선 과정이 문제였다"고 반박했다.

인명진 공동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과 당이 서로 붙잡고 엉켜 있는 한 다음 대선은 어렵다.

당은 정권 재창출이 어렵고, 대통령은 남은 2년의 국정 성공이 어렵다"면서 "대통령은 결국 탈당해야 한다"고 했다.

김병준 국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특히 유승민 의원 사태가 결정타였다"면서 "선거 결과보다 선거 후 친박 위주의 정당을 만드는 게 우선순위 아닌가, 대통령이 퇴임 후 당권 장악 등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내부자의 자성…조동원 홍보본부장 비판도 = 백서에는 당 내부 관계자들의 '자성'도 담겼다.

사무처 당직자들은 내부 의사결정시스템이 '엉망'이었으며, 공천 파동이라는 첫 관문이 막히면서 유기적 협업체제가 무너졌다고 반성했다.

총선 과정에서 동영상 제작업체에 선거운동 동영상을 무상으로 요구한 의혹을 받는 조동원 전 홍보본부장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백서는 "홍보본부의 독단적인 업무 진행도 큰 걸림돌"이었다며 "홍보본부가 만든 특정 공약은 사무처 내부는 물론 후보자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고, 국민의 반응은 예상대로 냉랭했다"고 밝혔다.

또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예비후보들은 김무성 전 대표가 도입한 '상향식 공천'을 총선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이들은 "현역 의원을 도저히 당할 재간이 없다", "경선 경쟁이 너무 치열해 본선에서 발휘할 힘을 다 써버렸다", "완벽하지 않은 여론조사로 신빙성도 떨어지고 후보끼리 서로 돕기는커녕 헐뜯는다"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백서는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만들어보자는 의도였지만, 정치사의 혁명을 기대했던 상향식 공천은 실제 운영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 '두루뭉술' 해결책에 언론 탓까지 = 백서가 대안으로 제시한 해결책도 구체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백서는 ▲진심 어린 사과 우선 ▲계파갈등 종식 ▲수평적 당·청 관계로 전환 ▲지도부의 리더십 회복 ▲새로운 인재영입 필수과제 등의 해결책을 내놨으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총선 참패의 원인을 언론의 탓으로 돌리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백서는 방송 보도에 대해 "공천 갈등, 엉터리 여론조사를 실시간으로 보도한 방송"이라고 지적했고, 신문 보도에 대해서는 "공천 갈등 등에 대해서는 언론사의 성향과 상관없이 칭찬보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기자 ykb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