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한 달] 하루 한 건꼴 '기업 규제법' 쏟아내는 국회…규제 완화는 고작 5건
30일로 출범 한 달을 맞은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경제법안 네 건 중 한 건이 기업을 겨냥한 ‘규제 강화법’인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경제신문이 20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5월30일부터 한 달 동안 제출된 의원발의 법안(476건) 중 경제, 복지, 재정 등과 관련한 152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기업·고용 규제 강화’ 법안이 40건(26.3%)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 법안은 모두 야 3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이어 ‘복지 확대’ 법안이 19건(12.5%), ‘지방 재정 확충’ 17건(11.2%), ‘창업·투자 활성화’와 ‘근로자 권익 강화’가 각각 14건(9.2%), ‘소비자 권익 강화’ 13건(8.5%), ‘주거 안정·임차인 보호’ 10건(6.6%) 등의 순이었다. 또 ‘조세 감면’ 9건(5.9%), ‘신산업 진흥’ 6건(3.9%), ‘기업 증세’와 ‘규제 완화’ 법안이 5건(3.3%)씩 발의됐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은 지난 16일 징벌적 손해배상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의도적으로 위법 행위를 하거나 피해 발생을 용인한 경우 피해금액의 최대 3배까지 추가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합뉴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은 지난 16일 징벌적 손해배상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의도적으로 위법 행위를 하거나 피해 발생을 용인한 경우 피해금액의 최대 3배까지 추가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합뉴스
여소야대 구도인 20대 국회에서 야권은 ‘경제민주화 드라이브’를 공언해 왔다. 한 달 새 기업을 정조준한 40건의 규제법안이 나온 것은 그 결과다. 이런 양상은 4년 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발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아예 특정 기업의 실명을 못박은 법안도 적지 않았다.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이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며 해외 계열사 소유지분 현황 신고를 의무화했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일명 ‘삼성생명법’이라고 이름 붙인 ‘상법 개정안’은 보험사의 계열사 지분 평가방식을 바꿔, 사실상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의 매각을 강제하는 법안이다. 서영교 더민주 의원의 ‘소비자집단소송법안’에는 가습기 살균제 파문의 옥시레킷벤키저가 언급됐다.

재계의 한 대관업무 담당자는 “일명 ‘옥시법’이라는 이름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등 법안이 줄줄이 나올 예정인데 기업들로선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말했다.

청년실업 문제도 신(新)성장동력 발굴보다는 대기업에 고용을 할당해 풀려는 경향이 뚜렷했다. 민간 대기업에 3~5% 정도 청년 미취업자 고용을 의무화하는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은 노웅래·박남춘 더민주 의원, 박주선·김삼화 국민의당 의원이 각각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

법인세 최고 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는 ‘법인세법 개정안’은 벌써 세 건이 발의됐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연장하고 난임시술비, 교복구입비, 체험학습비 등에 세제 혜택을 주는 세법 개정안은 아홉 건이 제출됐다.

더민주 의원들은 ‘을(乙) 보호’ 법안을 집중적으로 내놓고 있다. 정성호·윤후덕·박영선 의원은 임대료 상승폭을 최대 5%로 제한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도 도입했다는 설명이지만 부동산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반론이 만만찮다.

우원식 더민주 의원의 ‘중소기업적합업종 특별법안’은 지금은 권고 수준인 중기적합업종을 법제화하는 것으로, 이는 더민주의 총선 공약이었다. 김경수 더민주 의원의 ‘대·중소기업 상생법 개정안’은 초과이익공유제 확산을 위해 공공부문의 입찰 제한 등을 활용하도록 했다. 변재일 더민주 정책위원회 의장은 “19대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법안이 제대로 처리된 게 없다”며 9월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안의 적극적인 처리 방침을 밝혔다.

복지법안 중에는 만 16세 미만 입원진료비 전액 국가부담(윤소하 정의당 의원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기초연금 인상(전혜숙 더민주 의원 ‘기초연금법 개정안’), 고등학교 무상교육(김태년 더민주 의원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등과 같이 조(兆) 단위 재정이 투입되는 것이 적지 않다.

신산업 진흥법안으로는 친환경자동차(이찬열 더민주 의원 ‘환경친화적 자동차법 개정안’), 크라우드 펀딩(추경호 새누리당 의원 ‘자본시장법 개정안’), 빅데이터(배덕광 새누리당 의원 ‘빅데이터 진흥법안’), 줄기세포산업(김승희 새누리당 의원 ‘첨단재생의료 지원법안’) 등이 발의됐으나 단 여섯 건에 그쳤다.

임현우/박종필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