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피해자 존엄·명예 회복 및 상처치유 노력 더 해야"

28일로 한일 정부간 군위안부 합의(작년 12월 28일)가 도출된 지 6개월이 경과한다.

한국 정부는 합의 이행을 위한 행보를 조심스럽게 시작했지만 아직 피해자들과 한국 내 여론의 반발이 여전해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상처 치유라는 최우선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속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합의의 핵심인 피해자 지원재단은 지난달 31일 준비위원회(위원장 김태현)가 출범했고 내달 중 설립 작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절차가 순조로우면 7월 중 재단이 설립되고, 그후 일본 정부가 약속한 10억 엔(약 116억 원)의 기금 출연이 이뤄질 전망이다.

한국의 4·13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함으로써 위안부 합의 이행이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한국 정부는 일단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작년 합의를 계기로 한일관계 개선 쪽으로 방향을 튼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더욱 커진 상황에서 한미일 간의 원만한 안보 공조를 위해서라도 한일간 당면 현안인 군위안부 합의를 이행해 나간다는 기조다.

일본에서도 자민당 일각에서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과 기금 출연을 연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긴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소녀상 문제를 제기하며 기금 출연을 미루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일본 관방 부(副)장관은 27일 정부 대변인 자격으로 행한 기자회견에서 소녀상 철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도 10억 엔을 재단에 출연할 것인지에 대해 "일한 양국 외교장관이 지난해 연말 발표한 합의 내용에 따른다"고 말했다.

소녀상 관련 한일 외교장관 합의는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며, 기금 출연과의 연계 내용은 없다.

아베 정권도 '군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이뤘다며 한일 합의를 정권의 외교 치적으로 홍보해왔기 때문에 합의가 좌초하는 상황은 바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합의 이행의 길 위에는 피해 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일과 한국내 반발 여론 돌파라는 과제가 있다.

한국 정부로부터 군위안부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들(238명) 가운데 생존해 있는 41명 중에는 여전히 합의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할머니들이 적지 않다.

정부는 한 명 한 명 만나 합의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지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나눔의 집 등 피해자 지원단체와 이들 단체에 거주하는 피해자 10여명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대협 등 시민단체들은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와 재단설립 추진에 맞서 지난 9일 별도의 '정의기억재단'을 설립했고, 한일 합의에 대한 반대 여론이 강한 상황에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합의내용 수용불가'라는 기존 당론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부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려는 민간 단체의 사업에 대한 지원 예산을 삭감하기로 한 한국 정부의 방침이 지난해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때문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피해자들의 거부와 한국 여론의 반발로 좌초했던 1990년대 아시아여성기금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이종원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라는 합의의 기본 정신을 구현하는 부분이 너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합의 이행을 서두르기보다는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등을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일본 정부를 향해서도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이 되기 전에 일본에서 10억 엔과 소녀상 연계론이 나오고 그에 대해 한국에서 감정적인 반응이 나옴으로써 합의 이행에 어려움이 초래됐다"며 "합의의 기본 정신이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이니 일본 정부도 그것을 위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세영 동서대 교수는 "합의 이행 성공의 관건은 피해자들과 관련 단체, 한국 국민들을 상대로 폭넓은 이해와 공감대를 확보하는 일"이라며 "그것이 된 상태에서 재단이 설립될 때 원만한 해결의 수순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