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홍영식의 정치가 뭐길래] 부메랑 맞은 안철수의 ‘새정치’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지난 4월 총선 전 기회 있을때 마다 했던 말이다. 안 대표가 정치권에 들어온 이후 줄곧 내세웠던 ‘새정치’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는 총선 이틀 앞으로 다가왔던 지난 4월11일 인천 연수·남동갑 합동유세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그 말을 그대로 인용하겠다”며 “(더불어민주당에서) 경제만 문제라고 얘기하는데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또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인데 정치가 그 문제를 풀지 못하고 허구한 날 싸움만 한다”고 비판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2년 미국 대선 당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선거 구호로 내세운 바 있다.

앞서 지난 3월29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중견 언론인 모임) 초청 토론회에서도 안 대표는 “많은 분이 ‘경제가 문제’라지만, 경제는 여전히 정치에 얽혀 있다”며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는 말을 강조했다. 경제정당을 표방했던 더민주를 정면 겨냥한 발언이었다.

안 대표는 “3당 정립 체제가 돼야 우리나라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국민의당을 창당했다”며 “대한민국의 위기상황을 풀지 못하는 것은 결국 사람 문제가 아니라 정치구조의 문제”라고 말했다. 또 새누리당과 더민주를 향해 “쉽고 게으른 정치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존 정당을 ‘구정치’로 몰아세우며 이들과 차별화 된 정치를 펼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국민의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해 20대 총선에서 38석을 얻어 원내 3당의 지위를 확고히 챙겼다. 예상 밖 성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총선 승리의 한복판엔 안 대표가 서 있다. 그의 대선가도에 파란불이 켜졌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그러던 안 대표는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 리베이트 의혹 사건’으로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 사건 자체가 새정치 이미지에 먹칠을 가했을 뿐 아니라 대처 능력도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9일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안 대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고 받았다”고 김 의원을 옹호했다. 그 다음날 사태가 확산되자 국민의당은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안 대표는 “송구하다”고 했으나 박지원 원내대표는 “당의 운명을 검찰의 손에 넘기지 않겠다”며 검찰 수사에 대해 견제구를 날렸다. 이상돈 국민의당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영장 청구하고 기소하면 검찰은 망신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와 국민의당은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리얼미터가 27일 공개한 6월 4주차 주간집계(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39명 대상 전화면접, 스마트폰앱 및 자동응답 혼용 방식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에 따르면 안 대표의 지지율은 지난주에 비해 0.8%포인트 떨어진 11.5%를 기록했다. 12주만에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

국민의당 지지율은 4·13총선 공식 선거운동 이후 최저 수준인 15.5%로 떨어졌다. 광주·호남 지지층이 대거 이탈했다. 6월 3주차 여론조사에서 광주·호남 유권자의 국민의당 지지율은 37.7%였으나 이번에는 24.9%로 조사됐다. 1주일 사이에 12.8%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더민주의 광주·호남지역 지지율은 지난 여론조사 때 27.5%였으나 이번에 37.2%로 9.7%포인트 올랐다.

당이 위기에 처하자 안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송구스럽고, 결과에 따라 엄정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불거진 후 세 번째로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이번 사과에도 불구, 안 대표의 입지는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은 안철수계와 호남계 사이의 당내 파워게임 산물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사건 연루자들은 ‘안철수계’로 불린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호남의원들이 반발하면서 권력 구도에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새정치를 모토로 했던 안 대표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안 대표의 관련 여부를 떠나 리베이트 사건 자체가 ‘기존 정치와 다를 바 뭐가 있나’라는 것이다. 안 대표의 책임론까지 불거질 경우 당 내분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