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질? 사의?…이근면 인사처장 퇴진 '미스터리'
삼성그룹의 인사전문가 출신으로 공직사회 개혁을 진두지휘해온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취임 1년7개월 만에 물러났다. 건강상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는 게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밝힌 사퇴 이유다. 그러나 불과 이틀 전까지도 공무원 채용방식 개편 등 향후 개혁 방향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내비친 이 처장이 갑작스럽게 퇴진한 배경을 놓고 많은 ‘뒷말’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이 처장의 후임으로 김동극 대통령비서실 인사비서관(54·경북 영주)을 임명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인사혁신처 업무 전반에 정통할 뿐 아니라 인사비서관을 3년 이상 지내 국정 4년 차 각종 인사 개혁과제를 마무리짓는 데 적임으로 기대된다”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 서라벌고와 서울대 사회교육학과를 졸업한 김 신임 처장은 행시 29회로 총무처, 행정자치부, 중앙인사위원회를 거치며 주로 인사 관련 업무에 종사했다. 행정안전부 인사정책관으로 재직하던 2013년 대통령비서실로 옮겨 인사지원팀장과 인사비서관을 지냈다.

인사처 관계자는 “이 전 처장이 과거 심장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취임 이후에도 약을 달고 다닐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며 “석 달 전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처장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석 달 전 사의를 밝힌 건 맞다”면서도 “(교체 관련) 자세한 얘기는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인사처 고위 관계자들은 청와대의 발표가 있기 두 시간 전에야 이 전 처장의 교체 사실을 전해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처장이 이틀 전인 지난 22일 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하고 향후 공무원 인사 개혁 방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날 인사가 자진사퇴가 아니라 사실상의 경질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전 처장은 인터뷰에서 “앞으로 5급 및 9급 공채 시험방식을 전면적으로 고치는 등 공무원 채용과정 개편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공직사회 혁신과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위해 2014년 11월 출범한 인사처의 초대 수장을 맡았던 이 전 처장은 공직사회를 상징하는 ‘철밥통’ 문화와 순환보직 관행, 연공서열식 평가 등 관료 집단의 관행을 깨뜨리는 데 주력했다. 민간분야의 성과주의를 의식해 공직사회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사처 안팎에서는 이번 인사가 경쟁과 성과 위주 개혁에 대한 공직사회의 반발 등이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가 올초부터 이 전 처장의 언론 인터뷰 일정 및 인사처의 각종 보도자료에 대해 청와대와 사전 조율토록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공직사회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돌출 발언’ 등을 막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청와대가 이 전 처장의 파격적인 언행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7월 개각설이 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강경민/장진모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