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자들은 대체로 개헌 필요성엔 동의하면서도 권력구조 개편에 치우친 개헌 논의는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개헌을 한다면 권력구조만 바꾸는 ‘원 포인트 개헌’이 아니라 국민 기본권 보장과 남북통일 대비 등 전반적인 국가 체제를 바꿀 수 있는 폭넓은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헌환 아주대 법대 교수는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30년 가까이 지나면서 시대 상황과 맞지 않는 점이 많아져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개헌 논의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며 “국민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바꾸는 개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국민 기본권 확대, 국회의원 특권 폐지, 새로운 경제 질서 등을 개헌 논의 과정에서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다는 평등권 조항을 연령, 인종, 장애 등에 따른 차별 금지로 확대해야 한다”며 “국민 참정권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헌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제민주화를 규정한 헌법 119조 등 경제 질서 관련 조항도 개헌 대상으로 거론된다. 김 교수는 “자유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측면에서 경제민주화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며 “재산권, 노동기본권 등도 함께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를 견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철수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국회는 예산 심의,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정부를 견제하는데 정작 국회를 감시하는 기구는 없다”며 “감사원이 국회 예산을 감사하도록 하는 등 정부가 국회를 견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국정감사도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국회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부터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또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선거 때마다 되풀이하는 후보 단일화 논란을 끝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개헌 논의에 국민 의견이 폭넓게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기구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해야 한다”며 “정치인들이 논의하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해선 안 되고 국민적 합의를 모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택 교수는 “국민이 주체가 되는 개헌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며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해 개헌의 큰 방향을 정한 다음 국회가 이를 수용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승호/박종필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