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3일 국회에서 제20대 국회 개원연설을 마친 뒤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여야 대표 등과 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국회에서 제20대 국회 개원연설을 마친 뒤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여야 대표 등과 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기업과 채권단은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20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공급 과잉과 수요 부족으로 지금까지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조선업, 해운업 등 주력 산업이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은 20분가량 한 연설에서 4분의 1 이상을 기업 구조조정 문제에 할애하면서 분식회계와 같은 적폐 척결과 고통 분담 등을 역설했다.

◆“말뫼의 눈물을 기억해야”

박 대통령은 연설에서 ‘절체절명의 과제’ ‘미루거나 회피하면 국가 경제가 파탄 날 것’ 등의 비장한 단어로 구조조정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조선업의 경우 비대해진 인력과 설비 등 몸집을 줄이고 불필요한 비용을 삭감하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으면 해당 기업은 물론 우리 산업 전체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구조조정을 지금 해내지 못하면 스웨덴 말뫼의 세계적인 조선업체 코쿰스가 문을 닫으면서 골리앗 크레인이라 불린 핵심 설비를 단돈 1달러에 넘긴 ‘말뫼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2002년 코쿰스는 경영 위기에 처하자 중량 7560t의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에 1달러에 팔았다. 말뫼시의 상징이자 최고의 자부심인 이 크레인이 해체돼 한국으로 옮겨지는 광경을 수천명의 시민이 부두에서 지켜봤고, 스웨덴 국영방송은 ‘말뫼가 울었다’고 보도했다. 박 대통령은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 등의 대책과 관련해 “6월 중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 고용유지 지원금의 요건을 완화하고 보험료 등의 납부를 유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은 기업·채권단 주도

박 대통령은 “산업 구조조정은 시장 원리에 따라 기업과 채권단의 주도로 추진해야 한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우리 사회와 경제 전반에 오랫동안 누적돼 곪아 있는 환부를 과감하게 도려내야 한다”고 밝혔다.

대우조선 경영진의 대규모 분식회계와 방만한 경영, 이를 방치한 채권단의 도덕적 해이 등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일관된 원칙 아래 투명하게 각종 비정상과 부실을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자들의 어려움을 완화하고 재취업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노동개혁이 조속히 마무리돼야 한다”며 19대 국회에서 무산된 파견근로법 등 노동개혁법안을 재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노동개혁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이다.

◆“국정 동반자로서 국회 존중”

박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거대 야당과의 ‘협치’ 의지를 내비쳤다. 박 대통령은 “국회와의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드리는 국정 운영을 펼쳐 나갈 것”이라며 “3당 대표와의 회담을 정례화하고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서 국회를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대화 제안 등에 대해 “비핵화 없는 대화 제의는 국면 전환을 위한 기만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북 압박 기조를 재확인한 만큼 남북관계 경색 국면은 상당 기간 더 이어질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취임사는 꿈으로 쓰고 퇴임사는 발자취로 쓴다”고 언급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연설 전체 맥락으로 보면 국회의원들에게 초심을 잃지 말고 국민을 위한 의정 활동을 펼쳐달라는 당부였지만 정치권에선 “임기를 20개월가량 남겨둔 대통령이 주요 국정과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