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이 1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위원장 사퇴를 밝힌 뒤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태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이 1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위원장 사퇴를 밝힌 뒤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은 17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당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려 했으나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무산됐다. 친박(친박근혜)계의 보이콧(집단 거부)으로 무산됐다는 관측이다. 혁신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용태 의원은 전국위 무산 직후 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비대위 추인이 안돼 당 지도부 공백 상태가 지속되는 한편 20대 총선 패배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쇄신 작업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친박과 비박(비박근혜) 간 계파 갈등의 골도 더 깊어졌다.

새누리당은 이날 전국위를 열어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추인하는 것을 포함한 비대위 구성안과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당헌 개정안을 의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국위 정원 850명 중 절반에 70여명 부족한 350여명만이 참석해 회의가 무산됐다. 전국위에 앞서 당헌 개정안을 심의하기 위해 개최하려 했던 상임전국위원회도 정원 52명 중 절반에 못 미친 18명만 참석해 열리지 못했다.

예정 시간을 40분 넘긴 오후 2시40분까지도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자 홍문표 새누리당 사무총장 권한대행은 “성원이 되지 않아 회의를 하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을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다”며 전국위 무산을 공식 선언했다. 정 원내대표는 전국위 무산이 확실해지자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이로써 비대위를 구성해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준비하고 혁신위를 통해 당 쇄신 방안을 마련한다는 정 원내대표의 구상은 물거품이 됐다. 총선 직후 전임 지도부가 총사퇴한 상황에서 전당대회까지 당을 끌고 갈 임시 지도부 구성조차 좌절된 것이다.

비대위와 혁신위 구성에 대한 친박계의 집단 반발이 전국위가 열리지 못한 배경으로 풀이된다. 친박계는 김세연 김영우 홍일표 의원과 이혜훈 당선자 등 비박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비대위원에 다수 포함된 것에 불만을 나타내왔다. 총선 패배 책임론이 친박에 집중될 수 있고 차기 당권 장악에도 불리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날 회의를 앞두고 친박계 의원들이 시·도당 위원장 등 상임 전국위원들에게 연락해 회의 참석을 막았다는 얘기도 돌았다.

김용태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위원장에서 사퇴한다”며 “국민에게 무릎을 꿇을지언정 그들에게 꿇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새누리당은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 오늘 새누리당에서 정당 민주주의는 죽었다”며 “국민과 당원에게 은혜를 갚고 죄를 씻기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총선은 말도 안 되는 공천 룰과 후보를 밀어붙인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친박을 심판한 것”이라며 “내가 혁신위원장에 내정돼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하니까 친박이 부담을 느끼고 저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성태 김학용 이종구 이혜훈 등 비박계 3선 당선자들은 전국위 무산 직후 긴급 회동을 열어 긴급 당선인총회 개최를 요구하기로 했다. 김성태 의원은 “전국위가 무산된 원인을 규명하고 당의 진로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호/박종필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