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 공백 장기화 불가피…친박-비박 정면 충돌 총체적 위기
친박, 다시 전면에 나서 세 과시…"친박 중진도 비대위 넣어야"
비박 "자폭테러·민주주의 사망" 반발…일각선 "함께 못간다"

비박(비박근혜)계와 중립 성향으로 구성된 새누리당의 임시 지도부 출범이 무산됐다.

새누리당 주류인 친박(친박근혜)계가 17일 예정된 상임 전국위와 전국위 소집을 사실상 보이콧함으로써 '비주류 임시지도부'인 비상대책위와 혁신위 출범을 저지한 것이다.

앞서 친박계는 정진석 원내대표가 뽑은 비대위원들과 김용태 혁신위원장 내정자에 대해 "강성 비박계 일색"이라며 반발해 왔고, 인선을 재검토하라는 성명을 낸 데 이어 집단행동을 통해 비주류의 당 장악에 제동을 걸었다.

이로써 총선 참패 후 정 원내대표를 수장으로 한 비대위 체제 전환을 통해 당 쇄신과 재건을 도모하려 했던 애초 계획은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히게 됐다.

또 총선에서 '민심의 경고장'을 받은 지 한 달이 넘도록 반성과 쇄신의 움직임도, 위기를 극복할 '리더'도 없는 무기력한 상황이 '지도부 공백' 장기화로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됐다.

비박계 김성태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특정 계파가 줄세우기를 통해 특정 지역은 아예 참석 자체를 무산시켜 전국위를 조직적으로 보이콧한 데 대해 국민으로부터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총선 이후 한동안 로-키(low-key) 모드를 유지해온 친박계가 다시 당의 전면에 나섬에 따라, 새누리당은 앞으로 양대 계파인 친박계와 비박계가 정치적 명운을 건 전면전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미 비박계는 친박계의 세 과시에 대해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혁신위원장에 내정됐던 비박계 김용태 의원은 즉각 회견을 갖고 혁신위원장직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이번 사태를 '새누리당 민주주의의 사망'으로, 친박계를 '비민주 집단'으로 규정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비대위원장에 내정됐던 중립 성향의 정진석 원내대표 측은 임시 지도부 인준이 무산되자 "친박의 자폭 테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혜훈 비대위원 내정자는 기자들과 만나 "당이 걷잡을 수 없는 내홍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계파 갈등을 여과 없이 국민 앞에 그대로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친박계도 "비박의 일방통행을 막고 협심하자는 뜻일 뿐"이라며 반격에 나섰다.

한 수도권 친박 의원은 "비대위를 구성할 때 그쪽(비박계) 사람들만 하고 우리 쪽 중진은 다 뺐다"면서 "김무성·유승민도 참패에 책임이 있는데, 친박에만 책임을 지우지 말고 서로 합심해 외부인사도 넣고 계파도 안배해 지도부를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계 일부에서는 정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친박계 인사는 "정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 겸직이 문제가 아니라 원내대표직도 물러나야 한다"면서 "우리가 표를 모아줬으면 잘했어야지 구국의 영웅처럼 착각하다가 밑천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의 내홍이 분당 사태로까지 치달을지도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는 새누리당 비주류와 국민의당의 연합 가능성, '친노당-친박당-중도정당'의 3당 체제 탄생 가능성 등을 거론하는 정계 개편 시나리오와도 맞물려 있다.

김용태 의원은 "국민의 뜻을 모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그를 비롯한 일부 비박계 의원들이 '친박계와는 함께 갈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김 의원과 가까운 정두언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이런 패거리 집단에 내가 있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겠다"면서 "자유민주주의가 보수인데, 새누리당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특정인에 대한 충성심"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이신영 류미나 현혜란 기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