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에 비판적 매체 배제…CNN기자 "北 매우 심각하게 반응"

북한에 제7차 노동당대회에 맞춰 각국 기자들을 초청하고도 취재활동을 제한한 데 이어 사실상 첫 기자회견에서 BBC 기자 추방 결정을 통보하는 등 극심한 보도 통제로 비난을 받고 있다.

북한은 130명에 이르는 외신 기자들을 평양에 불러모았지만, 애초 취재 목적인 당대회 소식은 관영 매체를 통해서만 접하도록 제한하고 취재진에게는 평양 명소 등만 공개했다.

이런 보도 통제는 9일 북한 측이 영국 BBC 방송의 루퍼트 윙필드-헤이스(49) 기자를 비롯한 취재진 3명을 추방하겠다고 밝히면서 정점을 찍었다.

북한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는 이날 취재진을 불러 기자회견을 열고 윙필드-헤이스 기자가 북한의 현실을 왜곡하고 날조했다며 이들 일행을 구금하고 추방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당 대회 취재차 방문한 외신들을 상대로 이뤄진 사실상 첫 번째 기자회견이었지만 내용과 방식 모두 일방적이었다.

APTN이 전한 기자회견 장면을 보면 이 단체의 오룡일 위원장이 성명을 읽고 통역이 이를 전달했으며 질문은 차단됐다.

오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윙필드-헤이스는 해명할 수 없는 이유로 평양비행장 봉사일꾼들에게 매우 위협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우리 공화국의 법질서를 위반하고 문화풍습을 비난하는 등 언론인으로서의 직분에 맞지 않게 우리나라 현실을 왜곡 날조하여 모략으로 일관된 보도를 했다"고 추방 이유를 밝혔다.

이에 평양에 있는 BBC의 다른 기자인 존 서드워스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신 기자들을 초청해놓고 보도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구금하고 심문한 데 대해 국제사회가 매우 좋지 않게 볼 텐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항의성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오 위원장은 "윙필드-헤이스는 공화국을 모독하는 행위를 한 데 대해 우리 정부와 인민들에게 공식 사죄하는 사죄문을 썼다"며 "BBC는 조선의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데 노력해야 한다"며 질문과 동떨어진 내용만 강조했다.

서드워스 기자는 재차 "보도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기자를 구금하고 추방하는 것이 정당한가"라고 질문했으나 오 위원장과 통역 등 북측 관계자들은 질문을 묵살한 채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현지에서 윙필드-헤이스 기자의 구금 및 추방 소식을 트위터로 먼저 전한 윌 리플리 CNN 기자는 이와 관련, "우리 일행도 정장을 차려입고 여권과 카메라 등 장비를 챙겨서 양각도 호텔로 돌아가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생방송 뉴스 연결을 통해 전했다.

이번이 열번째 북한 방문이라는 리플리 기자는 또 "정장을 입고 여권을 챙기라는 말은 북한 당국자와 면담을 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리플리 기자는 김정은 관련 보도에 대해 "북한에 취재하러 오는 모든 외신 기자들에게 매우 민감한 이슈"라면서 "북한 사람들은 지도자와 관련한 언급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날 기자회견도 일부 매체만 불렀고 비판적으로 보도한 외신 등은 배제했다.

현지에서 취재 중인 줄리 매키넌 미국 LA타임스 베이징 주재 기자는 트위터를 통해 기자회견장에 가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내가 쓴 기사들이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에' 기자회견장에 초청받지 못했다고 북한 수행원들이 말했다"고 전했다.

매키넌 기자는 자신과 파이낸셜타임스, 스카이뉴스 등은 기자회견에 제외됐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언론을 통해 번역·보도된 자신의 기사를 보고 북한 당국이 불만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내 보도 내용 어디가 아름답지 못했는지 질문하자 수행원은 '스스로 물어보라'고 답했다"고 덧붙였다.

매키넌 기자는 전날 북한 당국이 당대회 취재는 허용하지 않고 전선공장과 산부인과 등만 견학시키는 부조리한 상황이 마치 사뮈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현실판 같았다"고 표현한 바 있다.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inishmor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