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가 뭐길래] 중동국가 마음 사로잡는 한국 정상들의 협상 기술
중동의 독특한 이슬람 문화를 제대로 숙지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체감’을 보일 때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대통령이 중동을 방문할 때 친구, 동반자, 형제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이유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를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현지어로 “두스트 바 함라헤 쿱(친구이자 좋은 동반자)”이라고 했다. 또 모든 행사에 이슬람 전통 두건인 흰색 ‘루사리’를 썼다. 이란 법규엔 이슬람 신자가 아닌 외국인 여성도 이슬람식 복장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따라 박 대통령은 전용기 안에서부터 루사리를 착용했다. 박 대통령은 이란의 국기 색깔에 맞춰 분홍색과 연두색 재킷을 입었다.
청와대는 “이란 고유문화를 존중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하산 로하니 대통령 등 이란 측 인사와 악수하지 않았다. 이슬람 율법은 남녀가 공공장소에서 신체 접촉을 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09년 12월 400억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 수주 때 ‘감성 외교’를 적극 활용했다. 이 전 대통령은 셰이크 칼리파 빈자예드 알나흐얀 UAE 대통령과 만나 ‘우리는 형제’말을 여러번 했다. 중동 사람들은 형제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한국은 국가든 개인이든 한번 신뢰를 맺으면 오래간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이라크 시장 진출을 성사시키는 과정을 설명하며 “혁명정부의 형제, 친구들의 우정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대선 주자 시절 UAE를 방문, 모하메드 왕이 지은 시를 영어로 읊어 왕이 매우 기뻐했다. “Place me in your eyes and close. Let me in your eyes live(나를 그대의 눈 안에 넣어주오. 내가 그대의 눈 안에 살게 해주오)”라는 내용이었다.
UAE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왕세제(형인 칼리파 대통령은 건강이 좋지 않아 동생이 국정을 돌보고 있음)는 이 전 대통령에게 여러번 “한국과 UAE는 형제의 나라”라고 화답했다. 모하메드 왕세제는 공항까지 마중나왔으며 이 전 대통령의 거의 모든 일정에 동행했다. 왕세제는 이 전 대통령을 왕실 사냥터에 초청해 모닥불을 피워놓고 양국간 경제협력에 대해 깊숙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왕세제가 이런 행보를 보인 것은 파격적이라는 게 당시 UAE 측의 설명이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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