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가 뭐길래] 중동국가 마음 사로잡는 한국 정상들의 협상 기술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이란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공을 들인 것은 ‘감성외교’다. 이란이 발주하는 대규모 인프라, 에너지 발전 시설 공사 수주를 위해선 기술의 우수성 등을 알리는 정공법의 협상력도 중요하지만 현지 문화 존중, 인간적 신뢰, 우정 등을 ‘코드’로 한 감성적 접근법이 받침이 돼야 가능하다는게 중동외교 전문가들이 분석이다. 일종의 고차원적인 협상 기술이다.

중동의 독특한 이슬람 문화를 제대로 숙지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체감’을 보일 때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대통령이 중동을 방문할 때 친구, 동반자, 형제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이유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를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현지어로 “두스트 바 함라헤 쿱(친구이자 좋은 동반자)”이라고 했다. 또 모든 행사에 이슬람 전통 두건인 흰색 ‘루사리’를 썼다. 이란 법규엔 이슬람 신자가 아닌 외국인 여성도 이슬람식 복장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따라 박 대통령은 전용기 안에서부터 루사리를 착용했다. 박 대통령은 이란의 국기 색깔에 맞춰 분홍색과 연두색 재킷을 입었다.

청와대는 “이란 고유문화를 존중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하산 로하니 대통령 등 이란 측 인사와 악수하지 않았다. 이슬람 율법은 남녀가 공공장소에서 신체 접촉을 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09년 12월 400억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 수주 때 ‘감성 외교’를 적극 활용했다. 이 전 대통령은 셰이크 칼리파 빈자예드 알나흐얀 UAE 대통령과 만나 ‘우리는 형제’말을 여러번 했다. 중동 사람들은 형제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한국은 국가든 개인이든 한번 신뢰를 맺으면 오래간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이라크 시장 진출을 성사시키는 과정을 설명하며 “혁명정부의 형제, 친구들의 우정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대선 주자 시절 UAE를 방문, 모하메드 왕이 지은 시를 영어로 읊어 왕이 매우 기뻐했다. “Place me in your eyes and close. Let me in your eyes live(나를 그대의 눈 안에 넣어주오. 내가 그대의 눈 안에 살게 해주오)”라는 내용이었다.

UAE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왕세제(형인 칼리파 대통령은 건강이 좋지 않아 동생이 국정을 돌보고 있음)는 이 전 대통령에게 여러번 “한국과 UAE는 형제의 나라”라고 화답했다. 모하메드 왕세제는 공항까지 마중나왔으며 이 전 대통령의 거의 모든 일정에 동행했다. 왕세제는 이 전 대통령을 왕실 사냥터에 초청해 모닥불을 피워놓고 양국간 경제협력에 대해 깊숙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왕세제가 이런 행보를 보인 것은 파격적이라는 게 당시 UAE 측의 설명이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