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금인상 자제' 전면전 "일자리 창출·비정규직 격차 해소해야"

노동개혁 입법이 지연되면서 정부가 노동개혁 현장 실천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인상 자제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 전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해운, 조선, 철강 등 구조조정 대상 업종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고임금 방치는 기업 경쟁력의 급격한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8일 관련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 고액 연봉자 임금인상 자제 ▲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확산 ▲ 공정인사 확산 ▲ 청년·비정규직 보호 강화 등 4대 현안을 노동개혁 현장 실천 과제로 삼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정부가 가장 주력하는 사안으로는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인상 자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꼽힌다.

우리나라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수준이 국민 소득이나 산업 경쟁력에 비춰 지나치게 높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우리나라의 최대 경쟁국인 일본 기업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우리나라 업종별 대표기업의 국민총소득(GNI) 대비 임금수준을 보면 자동차는 3.40배로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도요타(1.79배)보다 높다.

조선은 2.64배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1.74배)보다 높다.

정유는 2.94배로 일본 정유업계 1위인 JX홀딩스(2.61배)를 넘어선다.

은행도 2.94배에 달해 세계적 금융기업인 미쓰비스UFJ(2.36배)보다 높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대차 정규직 근로자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1인당 9천600만원으로 독일 BMW의 평균 임금 6만6천달러(7천500만원)보다 높다.

BMW의 생산차량이 현대차보다 훨씬 고부가가치 차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정부는 이러한 대기업 정규직의 고임금이 국내 기업의 경쟁력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본다.

조선, 철강, 기계 등에서 구조조정 태풍이 몰아치는 것에는 이러한 고임금으로 인한 경쟁력 상실 탓도 있다는 분석이다.

야당도 '정규직 고통 분담론'을 제기한 만큼 대기업 정규직의 고임금을 수술할 호기가 왔다는 것이 정부의 기대다.

더 불어민주당 총선 국민경제상황실장을 맡았던 최운열 당선인은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이 우리 경제 수준에 맞지 않게 높은데, 노조의 조직력을 의식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며 "경영자들이 먼저 희생하고 정규직도 고통을 분담해야 고용도 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대기업 비정규직은 64.2, 중소기업 정규직은 52.3에 불과하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고작 34.6에 지나지 않는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3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상위 10% 임직원의 자율적인 임금인상 자제를 요청한다.

이 장관은 "상위 10% 대기업 정규직의 양보를 토대로 청년고용을 늘리고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완화하자는 것은 노사정 대타협의 근본정신"이라며 "공공기관과 더불어 사회적 책임이 막중한 30대 그룹 대기업이 선도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특히 동종업종에 비해 임금수준이 높다고 평가되는 자동차, 정유, 조선, 금융, 철강 등 5개업종과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기관은 임금인상 자제 동참을 강력히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선, 해운 등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을 검토하는 업종에 대해서는 강력한 자구 노력을 요구했다.

이 장관은 "고용사정이 급격히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은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등을 검토하겠다"며 "다만 이 과정에서 개별기업의 노사는 뼈를 깎는 자구노력은 물론,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 공정인사, 고용구조 개선 등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동개혁 현장실천 노력을 반드시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부는 300인 이상 사업장 및 공공기관의 연봉 1억원 이상 임직원 등을 대상으로 임금인상 자제를 집중 지도할 방침이다.

근로소득 상위 10% 수준인 연봉 6천800만원 이상 임직원은 자율적인 임금인상 자제를 권고한다.

노동계는 일자리 창출의 대의에는 공감하면서도, 대기업 정규직을 청년실업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에는 강력하게 반발한다.

한 국노총 정문주 정책본부장은 "대기업 CEO들은 수십억원의 연봉을 챙기는데 이들의 연봉은 과연 누가 통제하느냐"고 지적했고, 민주노총 이승철 대변인은 "대기업 정규직이 고임금을 받는다고 하지만 이들도 전셋값 상승에 시달리는 중산층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