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재발 방지에 남북대화가 최선"…日의 대북 접근 부정적
1985년 김정일, 소련 방문설 부상…실제로는 성사 안돼
한·중, 북·일 교차승인에 앞서 무역대표부 설치 추진도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4년부터 남북대화를 추진하면서도 북한과 일본의 관계개선은 견제하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부가 17일 공개한 1985년 외교문서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해 1월 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일본의 대북관계를 계속 예의주시하고 1984년 9월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모처럼 이뤄진 양국 간 좋은 관계가 일본 측의 필요 이상의 대북 접근을 통해 깨지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

남과 북은 1984년 남측 수해피해에 대한 북측의 지원 의사 표명과 남측의 수용을 계기로 남북대화를 이어갔다.

전 대통령은 "북측이 대남 무력적화 야욕을 은폐하면서 남북대화에 임하고 있음을 우리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대화에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이유는 첫째 한반도에서의 전쟁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최선의 방안이고, 둘째 대화를 통해 북측의 대남 적개심을 완화시키며, 셋째 북측 대표단들이 대화의 기회를 이용, 우리의 현실을 목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지시사항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당시 외교부 장관은 같은 달 8일 주일 한국대사에게 보낸 공문에서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면서 북한 노동신문 대표단과 북일우호촉진친선협회 대표단의 일본 입국이 허용되지 않도록 일본 정부와 긴밀히 접촉하라고 지시하기에 이른다.

같은 달 16일 주한 일본대사는 외교부에 전문을 보내 당시 주일 한국대사관 공사가 일본 외무성 아세아국장을 만나 노동신문 대표단과 북일우호촉진친선협회 대표단의 방문을 일본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보고했다.

당시 일본 외무성 아세아국장은 주일 한국대사관 공사에게 "노동신문 대표단과 북일우호촉진친선협회 대표단의 방일 문제는 아직 구체적으로 제기된 바 없다"며 "설사 일본 정부가 방문을 허용하더라도 이는 대북제재 조치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데 불과할 뿐, 북일 관계에 있어 새로운 정책방향 설정이나 대북한 관계 격상 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측의 신중한 태도에도 노동신문 대표단과 북일우호촉진친선협회 대표단은 그 해 일본을 방문했다.

한편 1985년에는 북한 김일성 국가주석의 후계자인 김정일의 소련 방문설이 부상하기도 했다.

홍콩 주재 한국총영사는 그해 1월 11일 외교부 장관에게 보고한 전문에서 "언론계 전문가들에게 탐문한 바, 김정일이 소련 방문 초청을 받은 것은 확실하며, 김정일이 소련에서 자란 점 등에 비춰 불원 소련을 방문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해 김정일의 소련 방문은 성사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198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본 방문 직후 중국과 일본이 남·북한을 소련·미국보다 먼저 교차 승인하는 구상을 1985년에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일명 '한강개발계획'으로 이름 붙은 이 구상은 일본을 통해 중국을 설득해 한국과 접촉에 응하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정부는 미·일에 이를 극비리에 타진했다.

아울러 한강개발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단계적 방안으로 한·중, 북·일 간 무역대표부를 설치하는 방안도 '북한산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됐던 사실도 이날 공개된 1985년 외교문서를 통해 새롭게 드러났다.

1985년 5월 1일 당시 이원경 외무부 장관은 주한 일본대사를 만나 전 대통령의 방미 결과를 전하면서 "(전 대통령은) 한반도 긴장완화 문제와 관련해 한·중공, 일·북 간 교차승인 구상,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단계적 방안으로 무역대표부 설치 문제 등에 관한 우리의 입장을 (미측에)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강개발계획과 북한산계획은 모두 중국 등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