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필 문건서 "북괴가 조총련·日좌익 등 이용"…언론보도 통제 시도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4년 당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한 시정 요구를 '북한이 한일간 이간을 노리고 배후 조종한 데 따른 행위'로 규정하고, 국내 언론의 관련 보도를 통제하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가 17일 공개한 1980년대 외교문서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고교용 역사교과서 검정 내용을 공개하기 4달 전인 1984년 2월6일 외무부에 대응 지침을 담은 자필 문서 한 장을 내려보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일본 역사교과서 시정을 요구하는 움직임을 북한이 조총련과 일본 좌익계 노조 및 지식인 등을 이용해 한일간의 이간을 노리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한국의 언론은 이에 편성하지 않도록 협조하시요"라고 지시했다.

일본의 역사 왜곡 지적과 이에 대한 시정 요구 뒤에는 한일 관계를 벌려놓으려는 북한이 있으며, 그런 만큼 국내 언론은 관련 보도를 '신중히' 해야 한다는 취지의 지시다.

당시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 문제는 1984년 2월2일 일본의 출판노동조합연합이 역사교과서 검정 실태에 관한 중간 보고서 '교과서 리포트 84'를 발표하면서 표면화됐다.

출판노련은 일본이 역사교과서에서 식민통치를 여전히 합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튿날 주일 대사관은 일본 외무성 북동아과 과장보좌를 만나 들은 "출판노련의 보고서는 검정제도 자체를 없애려는데 목표를 두고 있는 좌익 그룹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선전용"이라는 내용을 외무부 장관에게 긴급 전보로 보냈다.

이어 3일 뒤 전 전 대통령은 '북괴의 이간' 및 '한국 언론의 협조'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외무부에 하달한 것이다.

문교부가 그해 3월 작성한 회의 자료는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시정 요구 움직임을 "일부 좌경세력, 문부성과의 대립에 한ㆍ중공 등 관련 제국의 영향력 유도 노력" "북한도 한ㆍ일간 이간책의 하나로 조총련을 통해 교과서 문제 확대 유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향후 국내 대책으로 "교과서 문제의 재연 방지를 위한 국내 여론에 중점 대처" "사태 발전에 대비한 대언론, 정계의 접촉창구 구축" 등을 거론했다.

일본에 대한 대책은 "문부성의 검정 완료 시까지 '예의 주시'의 관심 표명선에서 대처"였다.

3개월 후인 1984년 6월26일 주일 대사관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 내용을 본국에 타전했다.

교과서 8권 중 6권이 일본의 한국 침략을 '진출'로 표기하는 등 역사 왜곡문제가 완전히 시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알렸다.

그러나 외무부는 6월28일 '교과서 문제에 대한 사전 설명자료'에 "82.9. 아측(한국측)이 즉각 시정을 요구한 사항에 대해 상당 부분 시정이 이뤄진 것으로 보임"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본에) 적극적 수정까지 요구하는 것은 내정 간섭적 인상을 줄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검정 제도상의 문제점도 있어 신중하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음"이라고 적었다.

앞서 정부는 82년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가 불거지자 39개 시정 사항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

외무부는 또 "동 문제를 너무 국민감정 차원으로 몰아서 결과적으로 일본과 국내의 좌우 대립에 이용당하거나 북한 및 조총련들의 한일 이간 책동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대처"해야 한다며 언론의 '협조'를 강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engi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