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 패권주의가 상당 부분 무너진 것이다. 여권의 텃밭인 대구에서 야당이 당선자를 내고 낙동강벨트에서도 야권 후보들이 약진하는가 하면 호남에서도 3선 여당 의원이 탄생하는 이변이 속출했다.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정치권의 지역패권주의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야권의 텃밭이던 호남에서는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전남 순천)가 호남 지역의 첫 번째 여권 3선 의원이 됐다. 전북 전주을에 출마한 정운천 새누리당 후보도 오후 10시 현재 최형재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5%포인트 차로 앞서며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여권의 심장부인 대구에서는 김부겸 더민주 후보(수성갑)와 홍의락 무소속 후보(북을)가 큰 표 차로 새누리당 후보를 따돌리며 일찌감치 당선을 확정지었다. 사실상 야당 후보 두 사람이 동시에 당선된 것이다.

낙동강벨트에서도 야권 바람이 뚜렷했다.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와 개표 상황에서 새누리당의 우세가 다수였지만 야권은 만만치 않은 득표력을 보이며 여권을 압박했다. 오후 10시 현재 부산 18개 지역구 가운데 남을, 진갑, 연제 등 6개 지역에서 5%포인트 이내의 접전을 이어갔다. 방송 3사의 출구조사에서는 부산 사상, 사하갑, 강서갑, 남을 등 네 곳에서 더민주가 우세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개표 결과 새누리당이 우세를 이어가는 지역에서도 야권이 만만치 않은 득표력을 보였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지역인 중·영도에서는 김비오 더민주 후보가 오후 10시 현재 39.42%를 득표하는 등 새누리당 우세 지역에서도 야권 후보들이 30% 이상의 득표력을 보이며 ‘야풍(野風)’을 반영했다.

강남벨트의 ‘반란’도 주목된다. 서울 송파을과 송파병에서는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각각 최명길·남인순 더민주 후보가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한때 여권에서 ‘천당 아래 분당’이라 불릴 정도로 여권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경기 성남 분당은 최대 이변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분당갑에서는 김병관 더민주 후보가 ‘진박(진짜 박근혜계)’ 권혁세 새누리당 후보를 8%포인트 차로 여유 있게 따돌렸고 분당을 역시 김병욱 더민주 후보가 전하진 새누리당 후보를 7%포인트 차로 앞섰다.

여야는 ‘텃밭’으로 믿고 신인을 전략 공천한 지역에서 고전을 이어갔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여성우선추천지역으로 선정한 대구 수성을에서는 공관위에 반발해 탈당 뒤 무소속으로 출마한 주호영 후보가 이인선 새누리당 후보를 큰 표 차로 앞서 당선을 확정지었다. 더민주는 전통적인 텃밭인 광주 북갑에 3선의 강기정 의원을 배제하고 정준호 후보를 공천했지만 김경진 국민의당 후보에게 크게 뒤지면서 사실상 낙선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